무너진 곳 메우고, 경사진 곳 다듬어야
무너진 곳 메우고, 경사진 곳 다듬어야
  • 경남일보
  • 승인 201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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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과수원 임도 정비
낮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짧다는 동지가 지났다. 그동안 하루가 다르게 낮아지는 기온에 밝은 낮 시간까지 줄어드니 바깥 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소한 대한으로 대변되는 매서운 겨울날씨가 기다리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하루에 단 1분이라도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추운 날씨는 한동안 계속되겠지만 길어지는 낮의 길이만큼 움츠렸던 신체활동도 활발해져 마음까지 밝아지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지난주부터 시작했던 매실나무전정보다 급한 일이 생겨 며칠 가지치기 작업을 쉬어야 했다. 과수원에 접하고 있는 농수로정비가 끝나자 손볼 곳이 갑자기 발생했기 때문이다. 도랑이 아무렇게 흐르고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시멘트로 만든 관을 묻고 농로를 넓히자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드러났다.

굴삭기를 수소문하여 무너진 곳은 쌓고 붕괴위험이 있는 곳은 흙을 파 낮은 곳으로 옮겼다. 그동안 제멋대로 자라나 귀찮게 했던 잡목과 지난 가을에 과수원을 정리하며 쌓아 두었던 배나무 둥치는 땅을 파 묻었다. 하루 정도면 끝날 것 같았던 일이 이틀을 해도 끝나지 않고 계속 할 일이 생겼다.

위험한 곳을 손대자 과수원에 난 작업로도 손을 봐야 했다. 파헤쳐진 곳은 메우고 무너진 곳은 흙을 쌓거나 아예 새로 도로를 내었다. 경사가 급한 곳은 일을 시작한 김에 새로 길을 닦았다. 굴삭기기사는 일을 하면서 아무리 완벽하게 해 두어도 장마철이 지나면 손볼 곳이 또 생길 것이라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굴삭기를 부른 김에 창고로 쓸 비닐하우스 지을 땅도 고르고 다졌다. 땅을 고르기 위해서는 먼저 있던 비닐하우스부터 철거를 해야 했다. 철거를 위해서 20여년을 사용하며 쌓아 두거나 보관해 왔던 물건부터 끄집어냈다.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 있어 그 양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상자는 밖으로 꺼내 차곡차곡 쌓아 창고를 새로 지을 때까지 보관하기 위하여 차광막으로 덮어 두었다. 비료는 운반용구로 실어 다른 창고로 옮겼다. 파쇄기를 비롯한 기계는 꺼내 공터에 모아두고 비가 맞지 않도록 비닐로 덮고 끈으로 묶어 두었다.

지금처럼 골판지상자에 담아 규격출하를 하기 전에 사용했던 대바구니가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용할 일이 없어 쌓아 둔지가 20년은 더 지나 반쯤은 썩어 만지면 바스러질 정도였다. 옛날에는 배를 출하하기 위하여 60kg 넘는 무게를 담았던 용기였다.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니 짐만 된다며 불에 태워 없애버리라고 한다.

창고를 지을 때 논바닥을 고르고 그냥 지었던 곳이라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괸 벽돌부터 드러내야 했다. 벽돌을 들어내자 맨 밑바닥에는 빈 비닐포대가 여러 겹으로 깔려 있었다. 흙에 반쯤 파묻힌 비닐포대를 들어내니 수 백 장이 넘었다. 새로 물건을 쌓을 때마다 바닥에 물기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깔았던 것이 모여 많은 양이 된 것이다.

석회유황합제를 담아 사용하고 쌓아 두었던 플라스틱통도 많은 공간을 차지한 물건 중에 하나였다. 플라스틱통과 비닐, 고철 등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은 모으는 사람이 있어 전화를 하니 모두 가져간다고 했다.

비닐하우스를 해체하니 비닐과 차광막으로 덮었던 그물망의 부피가 보기와 다르게 많았다. 비닐하우스를 지은 후 비닐을 교체하지 않고 비가 새거나 찢어지면 다시 덮어 보수를 해 왔기 때문이다. 수집상이 끌고 온 작은 트럭으로는 한 번에 옮길 수 없어 두 번에 걸쳐 나누어 실어야 했다.

비닐하우스를 지탱했던 철재파이프까지 뽑아내자 바닥이 드러났다. 바닥에 남아있던 이물질까지 제거하고 굴삭기로 흙을 담아와 펴고 높낮이가 없도록 골라 다졌다. 바닥을 고르기 전에는 있는 흙을 이용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렇게 하면 비가 많이 내릴 경우 물이 넘칠 수 있으니 한 뼘 정도는 돋우어야 한단다. 흙을 옮겨 와 돋우려고 하니 그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흙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생각만큼 좋은 흙 구하기가 어려웠다.

바닥을 돋우기 위하여 흙을 옮겨오다 보니 굴삭기 작업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다. 당초 일정보다 이틀을 더 하고서야 작업이 끝났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그동안 마음에만 두고 손을 대지 못했던 작업을 마저 끝내는 보람도 있었다. 더 가꾸고 손을 보아야 되겠지만 이번 작업으로 땅이 되살아난 느낌이 들어 더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정찬효 시민기자

과수원 임도정비
과수원 임도를 굴삭기가 정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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