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권 사회의 위험성
고액권 사회의 위험성
  • 경남일보
  • 승인 201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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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오늘날 물가가 급등하는 등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는 대개 고액권이 유통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액면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별도로 발권당국의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의도적으로 고액권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경우 화폐가 경제 실상과 비교해 액면 금액이 너무 낮아 금융거래에 대한 활용이나 휴대에 따른 불편, 자기앞수표 관리 비용 등 정책적으로 고액권 필요성을 인식하여 2009년부터 5만 원 고액권을 유통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은 고액권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5만 원권 발행 잔액이 1만 원권의 2배에 달했고, 지난해 말 화폐발행 잔액이 54조3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1.7% 늘었다고 밝히고 있다. 화폐종류별로는 5만 원권이 32조7660억 원으로 26% 증가했고, 1만 원권은 16조9660억 원으로 7% 줄었다.

서민 생활경제, 5만 원권 사라지고 있어

지금 시중에서는 5만 원권을 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연말연시, 그리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은행 현금출납기기에 아예 5만 원권 출금불가를 메모해 놓고 있다. 이는 은행에도 5만 원짜리 돈이 없고, 유통화폐 가운데 고액권이 돌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목돈 보관이 쉬운 5만 원권의 경우 올 9월까지 발행기관인 한국은행으로 되돌아오는 환수율은 48.0%다. 2011년 59.7%, 지난해 61.7%에 비하면 뚝 떨어진 수치다. 금고 속에 꼭꼭 쌓아두는 돈이 많다는 얘기다.

고액권의 발행이 10만 원 자기앞수표를 고액권 화폐로 대체함으로써 연간 2800여억 원의 추정 비용 절감, 화폐제조 및 운송 등에 따른 연간 약 400억 원 이상의 관리비용 절감, 그리고 현금 입출 및 수수시 소요시간 단축 등 국민생활의 편의성과 발행비용의 절감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액권 발행은 불법 정치자금의 조성과 뇌물수수 등 음성적 거래에의 유혹을 안고 있다. 그리고 불법증여, 음성자금과 세금 회피의 단위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추적이 어려운 고액 현금거래를 통해 탈세를 더욱 용이하게 하여 세수 차질을 가져 올 수 있다. 이것은 결국 거래의 투명성과 소득파악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가청렴도 지수가 40위권에 머물고 있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제도적인 감시장치가 없는 고액권의 유통은 뇌물의 크기를 키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국가청렴위원회는 고액권 발행이 뇌물수수, 비자금 조성, 범죄수단 등 불법적·음성적 거래를 조장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이에 대한 보완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북 김제 마늘밭에서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번 110억 원대의 불법자금이 5만 원권 뭉치로 발견된 것은 고액권의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무려 22만1145장에 이르는 5만 원권이 지하경제용으로 이용된 것이다. 지난 2월 여의도 개인 물류창고에서 발견된 현금 10억 원 중 8억 원이 5만 원권이었다. 부피가 작고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법자금이나 거래에 5만 원권이 이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투명사회운동본부 같은 단체에서는 고액권 지폐사용을 지양하고 투명성이 확보되는 수표와 신용카드 및 인터넷뱅킹 등의 전자거래의 확산을 촉구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314조3000억 원, 이 같은 결과는 2009년 6월 새로운 고액권 지폐인 5만 원권이 발행됨과 동시에 현금을 통한 거래 및 재산보유와 이전이 보다 용이해졌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돈이란 물과 같은 것, 잘 돌게 해야

비리가 터져서 돈이 나왔다 하면 모두가 고액권 현금이다. 각종 비리에 고액권이 동원되고 편리해서 이런 곳에 들어가니 고액권이 시중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돈이란 물과 같아서 사회에 잘 돌아야 나라의 경제도 살고 개인들도 살아갈 수가 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은행에 예치하나 집에 두나 이익이 없기는 마찬가지고 은행에 넣는다면 소득이 탈로가 나고, 탈세나 부정이 들어나니 차라리 고액권으로 바꾸어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도 금리의 동결이나 환율만 신경 쓸 일이 아니라 고액권을 취급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구별을 해서 탈세를 막고 장롱 속에 묶인 돈들을 시중으로 끌어내야 한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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