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土亭) 이지함
토정(土亭) 이지함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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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토정 이지함이 임종 자리에 마주 앉은 부인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다. “이제 당신이 돌아가시면 사람들 신수는 누가 봐 줍니까?”, “내가 뭐 천수를 알아서 신수를 봤는가? 사람들이 하도 졸라서 그렇게 한 거지?”, “그럼 앞일도 모르면서 사람들을 속였단 말인가요?”, “사람들은 내가 봐주지 않으면 다른 곳에 가서라도 기어코 신수를 점 쳐 봐야 속이 시원하게 마련이거든.”

▶본관이 한산(韓山)인 토정은 목은 이색의 6세손으로 중종 12년(1517) 외가인 충남 보은에서 수원판관을 지낸 이치(李穉)의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지영(之英), 지번(之蕃), 지무(之茂) 세 명의 형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둘째 형 지번한테서 글을 배웠다. 토정은 조선조 둘째 왕 정종의 증손 이성량의 딸과 혼례를 올렸다. 지함이 한강 마포나루에 10여척 높이의 진흙 정자를 짓고 살았는데 사람들이 토정(土亭)이라고 하자 이를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토정은 나이 쉰여섯이 되던 해 봄에 포천현감이 되면서 처음으로 벼슬길에 들어섰다. 일부러 남루한 옷을 걸친 토정은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포천 관아에 부임했다. 이듬해 백성이 잘살기 위한 방안을 건의했으나 조정에서 받아주지 않자 미련 없이 현감자리를 버리고 떠났다가 4년 후 아산현감으로 부임해서는 고을에 거지가 많은 것을 보고 걸인청을 만들었다.

▶‘토정집’에 이런 글이 보인다. ‘재물은 본래 흉물이 아닌데 나라의 재앙이 흔히 재물에서 비롯된다. 권세도 처음에는 흉물이 아니었는데 벼슬아치들의 재앙은 흔히 권세에서 비롯된다.’ 연말연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비결(秘訣)에 몰입한다. 요행심리를 꿰뚫은 그 비결이란 글을 과연 토정이 지었을까? 부귀건 권세건 요행으로 거머쥐어서는 안 된다.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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