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에 거는 새 희망
갑오년에 거는 새 희망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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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새해 들어 듣기 좋은 두 가지 소식이 우리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하나는 한반도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머지않아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G7대국’에 진입한다는 내용이다. 세계의 투기꾼으로 불리는 조지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설립해 큰 부를 쌓은 짐 로저스는 ‘5년 내 통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통일평화연구원은 남북한이 통일 되면 ‘종합국력지수’가 현재 세계 10워 권에서 2030년에는 세계 6위권으로 치솟는다고 했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압록강 푸른 물을 건너 대륙으로 진출할 것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우리는 세계정세를 거슬린 위정자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16대 임금 인조였다. 그 집권세력의 중심사상이 성리학이었다. 백성에게 정묘호란이란 호된 시련을 입히고서도 조정이 친명 자세를 버리지 않자 국호를 청으로 고친 태종은 다시 10만 대군을 몰고 침입해 왔다. 남한산성에서 항복해 청 태종과 군신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었던 인조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잡혀 보내는 치욕을 당했으니 이것이 병자호란이었다. 나라가 혼란해지면 국론이 갈라진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조정에 친청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만주족을 오랑캐로 보는 성리학자들의 등쌀에 그들은 맥을 출 수조차 없었다.

17세기는 중국을 통해 전해오는 서양의 문물기운이 넘치던 시기였다. 정두원은 인조 9년(1631) 명으로부터 화포·천리경·자명종 등의 현대적 기계와 이마두의 ‘직방외기’, ‘서양국풍속기’, ‘천문도’ 등 서적을 들여 왔다. 새로운 화약 제조법도 이때 전해졌다. 당시 바다로 표류해 온 벨테브레이(박연·1628)는 발전한 서양 사정을 조선에 알렸다.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 갔던 소현세자는 9년 동안 조선인 포로의 속환문제 등 정치·경제적 현안을 맡아 처리하는 가운데 1644년 청나라 도르곤의 원정군을 따라 베이징에 들어갔다. 베이징에서 만난 선교사 아담 샬로부터 여러 가지 과학과 관련된 지식을 전수받았고 천주교를 이때 알게 됐다. 조선의 성리학이 이미 낡은 사상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나 집권세력인 서인은 성리학을 놓치고서는 존재 자체가 불투명한 친명파였다. 남한산성 전투의 패전으로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이마를 땅에 찧는 예를 세 번에 걸쳐 시행(三拜九叩頭)한 인조는 소현세자를 의심하고 감시했다. 같이 인질로 잡혀 있던 봉림대군은 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정에 일러 바쳤다.

소현세자는 34세 되던 해인 1645년 2월 18일 조선으로 돌아와 부왕을 알현했다. 이 자리에서 인조는 귀국선물로 바친 단계벼루를 세자에게 집어던졌다. 이마에 벼루를 맞은 세자는 피투성이가 된 채 그 자리에 나뒹굴었다. 소현세자는 얼마 안 있어 죽임을 당했다. 인조는 세자부인도 임금의 수라상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를 씌워 죽였다. 제주도로 유배를 보낸 세자의 세 아들 가운데 두 명이 효종 때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조선의 개혁 기회는 이렇게 사라졌다.

대원군은 걸출한 정치인이었다. 60년 장김세도를 물리치고 하루아침에 왕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의 정치력은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음에도 국제감각이 둔감했던 탓에 그의 개혁의지는 항아리 속의 태풍으로 그쳤다. 더욱이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이라는 격문을 전국 도처에 붙였으니 또 한 번의 개혁과 개방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사람은 인간답게 살기를 바란다. 인간답다는 것은 세계를 두루 돌아보고 다른 사람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삶이 풍족해야 하고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광복 이후 우리는 크게 두 단계를 거쳐 사람답게 사는 여건을 이룩해 냈다. 먼저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문명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다음으로 민주화를 이룩했다. 아직은 이보다 더 나은 삶의 형태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외부세계인들이 우리의 이 같은 성취를 얼마나 우러러보는지 정작 우리 자신은 모르고 산다. 올해는 우리가 가꿔온 이 삶의 형태에 반하는 세력이 사라지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통일을 두고 북한쪽에 편을 드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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