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아~ 빨리 와 다오
개학아~ 빨리 와 다오
  • 경남일보
  • 승인 2014.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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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예전에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엄마들이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개학을 간절히 기다렸는지 이젠 확실히 알 것 같다. 방학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아이의 시간을 다시 짜야 하는 숙제가 생긴다. 일정하게 짜져 있던 시간들이 갑자기 흐트러져 다시 그 시간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방학동안 집에만 데리고 있을 수 없어 가까운 곳이든 조금 먼 곳이든 방학을 이용해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된 여행이라는 것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경제적인 사정을 고려하면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고, 또 이왕이면 이 여행이 아이들의 방학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보태지면 정말 방학스케줄 짜기는 힘든 보고서 하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엄마인 나만 방학이 힘든 것은 아니다. 가만히 아이들 방학의 삶을 들여다보면 아이들 또한 방학보다 개학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방학의 가장 큰 호사거리인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방학 첫날부터 몸으로 보여주고 나타내고 싶지만, 엄마들은 그런 호사를 용납해주지 않아 첫날부터 아이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또 방학이 되니 먹고 싶은 것이 자꾸 떠올라 아이들은 끊임없이 음식메뉴를 엄마에게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눈에는 엄마가 이 세상의 최고의 요리사이고 또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겨울은 해가 짧아 아이들이 학원 몇 개를 돌고 와 집에서 겨우 좀 쉬려고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좀 하고 있으면 엄마 눈에는 하루 종일 TV와 컴퓨터 게임만 하고 있는 줄 안다. 저녁이 되면 괜히 지금까지 안 치우던 집 청소를 갑자기 한다고 야단을 떨고 집을 어질러 놓은 건 모두 아이들의 탓으로 돌려 아이와 또 전쟁을 치르며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일하는 엄마의 아이들은 방학 때 빈 집에 혼자 놔둘 수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학원 등으로 도는 일명 뺑뺑이 학원순례를 해야 한다고 계속 아이들에게 세뇌시켜 긴장시키기도 한다. 엄마가 불러준 방과후나 학원 프로그램에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의 방학시간표는 빽빽하게 짜져 있어 오히려 학교 다니는 것이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방과후나 학원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냥 집에서 노는 것이라고 하면 엄마는 나를 붙들고 왜 내가 학원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돌아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결국은 방학시간표를 빽빽하게 짜주신다.

가끔은 종일프로그램을 해주는 돌봄기관이나 시민단체에서 방학동안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볼 때도 있지만 모르는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 부담감과 다니던 학원을 못 가게 되고, 또 개학을 하면 다시 다녀야 하기 때문에 연계가 곤란하다는 문제가 생겨 쉽게 돌봄기관이나 단체를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초등학생들이 중·고등 학생들보다 방학 때 더 바쁘다고 한다. 그렇다고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보충이나 학원을 안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초등학생들이 더 바쁘게 보이는 것일까. 아마도 초등학생들은 아직 시간관념이 부족해 자기 스스로 학원이나 방과후 프로그램을 찾아다닐 정도의 여력이 없기에 엄마나 누군가가 아이들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더 바쁘게 보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혼자서 학원 가방이나 시간에 맞추어 가는 등의 주도적인 생활을 할 수 없으니 엄마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분주하게 보이는 것이 바쁘게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는 이미 방학이 너무 알차 오히려 개학을 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와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엄마인 나처럼 개학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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