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안상근·객원논설위원·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영화 ‘변호인’이 일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국가권력의 거대한 공작음모에 맞선 송우석 변호사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 말은 신념이나 이념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평범하고 상식적인 어투다. 누가 봐도 ‘아니다’ 싶을 때 던지는 말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다수의 힘이 실려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짧고 평범하지만 강하다.

요즘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이는 정치권의 기싸움을 보면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체가 문제다. 지방선거일이 불과 4개월 보름 정도 남았다. 선수들은 벌써부터 몸 풀기를 끝내고 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직 ‘게임 룰’이 정해지지 않았다. 기초선거를 준비하는 사람은 정당공천을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 모른다. 서울시와 광역시의 기초의회는 살아남을지 없어질지 오리무중이다. 교육감 선거도 시·도지사와 러닝메이트로 갈지 아니면 현행방식으로 갈지 알 수 없다. 여야 간 이견이 워낙 커 ‘룰 전쟁’이 언제 끝날지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선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혼란스럽다. ‘정말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역시 최대 쟁점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여부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에 안대희 전 대법관을 영입해 정치개혁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모두 바로잡겠다. 기초단체의 장과 의원의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지금 와서 새누리당은 위헌문제를 제기하며 공천폐지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한다. 심지어 여야 함께 위헌 공약에 대해 사과하고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대선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이를 지키지 못할 때는 사과부터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그 다음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약속 불이행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정당공천 폐지가 위헌에 해당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법관 출신 위원장이 내놓은 정치쇄신안을 헌법에 위배된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 때는 왜 헌법에 어긋나는 공약을 했는지도 소상하게 설명해야 한다. 약속파기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과든 설득이든 약속한 당사자가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다.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기초선거 공천에 대해서는 위헌 여부를 떠나서도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지방행정의 중앙정치 예속화, 공천과정에서의 밀실합의와 금품수수 등이 정당공천에 따른 부작용이다, 반면 공천폐지 시에도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의 난립, 지역 금권정치 확산, 여성의 정치진출 제약, 정당의 책임정치 실종 등의 부작용이 따른다.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공천폐지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에 논의부터 해야 한다. 부작용 차단을 위한 새로운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위헌문제까지 거론되는 정당공천 폐지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리당략을 떠나서 생각해야 답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다수의 기초단체장과 의회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정당공천 폐지가 지방선거에 유리할 것이다. 호남에서의 안철수 신당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공천폐지가 효과적일 것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공천제를 유지하는 것이 야권을 분열시키고 수도권을 공략하기에 좋은 카드다.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다. 그래도 국민을 손끝만치라도 생각한다면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

지금 여야는 지방선거 ‘룰’에 대해 합의점을 찾으려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연일 여론전만 펼치면서 지루한 장외공방만 하고 있다. 사안의 시급성과 중대성을 감안할 때 국회 정치개혁특위에만 맡겨서는 더 이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야 지도부와 대통령이 함께 나서야 한다. 당리당략을 떠나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대타협을 시도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이라믄 안되는 거잖아요’라는 따가운 질책을 받지 않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