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지 않아도 깊어지는 그런 산이 있다
높아지지 않아도 깊어지는 그런 산이 있다
  • 최창민
  • 승인 2014.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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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87>예산 덕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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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마을사람들에게 산 신령님의 본마누라, 작은마누라로 통했던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84호)
 
 
 
 
 
덕숭산은 높이가 495m에 불과해 이 기준으로 보면 하잘 것 없는 산이다. 그런데다 암릉과 바위 등 산세가 뚜렷하게 화려한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저 그런 야트막한 민둥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산높이로만 보면 굳이 돈 들여서 찾아갈 산이 아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코 그저 그런 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덕숭산을 허투루 보는 것은 사람을 겉만 보고 평가하는 속물근성과 다를 바 없다.

8000m급의 최고봉만을 올랐던 산악인 엄홍길(54)씨가 얼마 전 “높은 산을 오르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수평산행도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 최고봉을 완등한 클라이머가 한 말이니 무게 있게 와 닿는다. 그가 높이 대신 ‘깊이’를 음미할 수 있는 산으로 덕숭산을 꼽았다.

‘깊이의 덕숭산’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이 산은 총림의 지위를 얻은 수덕사를 품고 있다. “아!” 무릎을 ‘탁’ 쳤을지 모르겠다. “수덕사는 내가 알지, 아니 사실은…, 노래제목 ‘수덕사의 여승’을 알지.” 가요 말고 수덕사는 이 시대 최고의 명작 대웅전(국보49호)을 간직하고 있다.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래됐다는 부석사무량수전, 봉정사극락전과 함께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3대 목조건물이다.

700년 전 고려 말에 지은 것으로 배흘림기둥에 전면 3칸 측면 4칸 팔작 맞배지붕이다. 선과 면의 조화가 빈틈없이 아름다운 건물,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일제강점기 1937년 해체수리 시 묵서명에 1308년(충렬왕 34)에 건립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공스님(1871~1946)이 덕숭산과 수덕사 일대에 살았다. 기행(奇行)으로 더 많이 알려진 스님은 이른바 고기를 먹고 색까지 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화 중 하나, ‘딱따구리는 생나무에도 구멍을 잘도 뚫는데 우리 집 멍텅구리는 뚫린…’ 으로 나가는 속가의 음담을 법문교화로 은유했다 한다. 그래서 마구니 취급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수덕사 뒤편 금선동 바위 위에 손수 지은 소림초당에 살았다.

그에겐 국보급 가야금이 하나 있었다. 고려 말 공민왕이 홀연히 떠난 노국공주의 한을 달래기위해 만들었다는 가야금을 600년 만에 자기 손에 넣었다. 초당 뒤에 관세음보살입상도 세웠다. 바로 위에 자신의 마지막 흔적 부도도 위치하고 있다.

이외 비구니 사찰 견성암, 말사 정혜사가 유명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서산 용현 산 속에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마애여래삼존상(국보84호)이 있다.

▲덕숭산은 충남 예산 덕산면에 있다. 호서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으로 수덕산이라고도 한다. 1973년 3월 덕숭산과 인근 가야산 일대가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등산로는 수덕사주차장→선문→일주문→금강문→사천왕문→황하정루→대웅전→관음전→견성암 갈림길→4면석불→벽초스님1080계단→소림초당→관음보살입상→향운각→만공탑→정혜사(능인선원)→덕숭산 정상→정혜사 회귀→수덕사 5㎞에 2시간 30분 소요됐다.→서산 마애여래삼존상.

▲오전 10시 7분, 수덕사 주차장 출발 후 각종 약재를 파는 약령시장을 지난다. 예쁘고 깨끗하게 정돈돼 있는 아담한 시장이다.

선문과 일주문을 통과한 뒤 고암 이응로 화백의 고택이었던 수덕여관을 지난다. 황하정루 뒤편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아 절집 마당에 선다. 중앙에 건물이 달처럼 떠 오른다. 천년의 아름다움 수덕사 대웅전이다. 왼쪽 백련당 오른쪽 청련당. 멀리 뒤로는 덕숭산이 여승처럼 누워 있다.

대웅전은 차라리 잘 만들어진 도자기처럼 미끈하고 고풍스럽다. 7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바람 한 점 비집고 들어갈 만한 실책이 없다. 그래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측면 벽면과 노출된 나무기둥의 선 분할이 기하학적으로 치밀하고, 겨자색의 나무에서 느껴지는 색감과 질감은 고색창연하다. 아름다움은 결코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칼라 풀하게 덧칠하는 것이 아니란 걸 보여준다. 단순함과 간결함, 절제됨이 응축돼 표출되는 도도함이 감동이다. 학계에선 고려 때 건축물이면서 백제의 미감이 스민 건축물로 평가하고 있다. 수덕사는 ‘총림’의 지위를 얻은 국내 5대 명찰 중 하나. 현존 유일의 백제 사찰로 법왕 599년에 창건됐다.

관음전 돌담 밑을 걸어서 산길로 접어든다. 사면불상 앞 갈림길에서 왼쪽이 견성암 가는 돌계단 길이다. 견성암은 1930년 건립한 최초의 비구니 선원. 일엽스님은 속세 지식인과의 러브스토리에 지쳤던지 어느날 견성암에 들었다. 그 일화가 ‘수덕사의 여승’ 유행가를 낳았다.
 
 
gn20140117덕숭산수덕사마애삼존등 (55)
수덕사 대웅전(국보 49호)과 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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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초당
 

오른쪽 얕은 계곡을 끼고 오른다. 오전 11시, 계곡 건너 비스듬한 암반에 ‘금선동’ 글귀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 만공이 살았던 소림초당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초당 앞 갱진교를 건널 수는 없다. 만공은 불교에서 금기시하는 갖은 기행에도 불구하고 선 세계에서는 이름을 떨쳤다. 풍류를 알았는데 만해 한용운과 남농 허건, 의제 허백련, 김좌진 장군과 교류했다.

만공스님이 공민왕의 가야금을 손에 넣은 사연이 재미 있다. 불교에 귀의한 의친왕 이강이 만공스님에게 큰 깨달음을 받자 이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청을 들었다. 만공은 주저하지 않고 가야금을 지목했다. 공민왕이 노국공주를 그리워하며 만든 것으로 대대로 궁궐에서 내려오던 악기였다. 가야금을 손에 넣은 만공은 마음에 들었던지 소림초당 밤하늘에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술 한잔 얼큰하게 취한 채 가야금을 뜯으며 놀았다고한다.

갱진교를 돌아 나와 늙어서 죽은 거목 옆을 따라 올라서면 관음보살입상이 버티고 선다. 이 또한 1924년 만공스님이 조성 봉안했다. 인간사 8가지 고통인 생, 노, 병, 사, 구부득, 애별리, 원증회, 오음성고를 덜어 주는 감로수병을 손에 들고 있다.

조경수처럼 자라고 있는 솔숲과 석문이 차례대로 나온다. 해인사 입구 홍류동 솔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송림이다. 산 전체가 하나의 공원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런 솔과 길, 당우가 깨끗하게 정돈돼 있기 때문이다. 낙엽 버석이는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솔잎향이 코끝을 스친다.

정혜사 앞 작은 공터에 있는 만공의 마지막 흔적 부도. 전통적 형태와는 확연히 다른 원구형 부도다. 제자가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만든 것이라 한다.

76세, 만공스님이 떠나던 날. 거울 안의 자신을 보고/이 사람 만공, 자네와 나는 70년 동안 동고동락해 왔지만 오늘이 마지막일세. 그동안 수고했네. 나는 가네./ 그랬다 한다.

정혜사도 출입금지다. 담장 너머 처마 끝 풍경소리가 ‘딸깍’거린다. 고승의 수도처다. 약수터에는 부처님의 젖을 의미하는 불유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오전 11시 45분 정상. 허무하게 낮은 산이다. 왼쪽 길을 따라 5분정도 나가면 작은 공터 큰 바위 앞에 조망이 있다. 수덕사 일부가 보이고 멀리 금북정맥의 끝자락 산군과 서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산세는 화려하다거나 멋스러움이 별로 없다. 그저 정상을 중심으로 둥그스름하게 고도를 낮추는 덕산일 뿐이다. 어쩌면 수덕사 대웅전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닮았다고 할까. 하산 후 대웅전에 도착한 뒤 오후 2시 20분에 주차장에 회귀한다.

▲고개너머 서산 용현리 가야산 중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은 신기할 뿐 아니라 신비롭기까지 하다. 편안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 입상(중),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제화갈라보살입상(좌), 천진난만한 소녀의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사유상(우)은 백제 특유의 자비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불상의 미소는 빛에 따라 달라지는데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짓는다. 누구나 쉽게 다가가 의지하고 친숙해질 수 있는 사실적이고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백제의 미소’라고 부른다.

1959년 홍사준 부여박물관장이 당시 백제사 연구를 위해 보원사에 머물렀는데 마을사람들에게 문화재 관련 수소문을 했다. 이때 한 나무꾼이 말하기를 “담댕이골 산속 바위 벼랑에 웃고 있는 산신령님 세분이 새겨져 있다”고 제보하면서 알려졌다. 그 전까지 이 불상은 마을사람들에게 ‘웃고 있는 산신령님과 본마누라 작은 마누라’로 통했다.
gn20140117덕숭산수덕사마애삼존등지도 (6)
덕숭산지도
 
gn20140117덕숭산수덕사마애삼존등 (109)
덕숭산 중턱 정혜사 앞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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