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만큼 더 담을 수 있다(一夜九渡河記)
비운만큼 더 담을 수 있다(一夜九渡河記)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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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순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강사, 예담대표)
컵에 물이 가득 차 있다. 더 이상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넘쳐 흐른다. 이 컵에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다. 먼저 담긴 것을 완전히 비우고 담을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것을. 나를 내려놓고 더 낮추고 더 비우고 살아야 더 홀가분해지는 것도 이런 원리가 적용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하라. 더욱 자유로운 사고와 가치관으로 획일화된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벗어 던진 행위 속에 더 많은 자유와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어떤 것도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 없으며 항상 예외를 염두에 두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수년 전 두 아들과 함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향해 태평양 위를 날고 있었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 떠난 장시간의 출장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수만 고도 하늘 위에서 더 많이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더 낮추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몇 겹으로 잠가 놓은 내 작업실. 그 속에는 두 트럭 분량의 그림 작업들과 수많은 책, 수첩, 통장, 카드 등등. 하지만 그렇게 아끼던 소중한 것들이 만일 비행기 폭파범에 의해, 아니면 기체결함이나 이상기류에 의해 공중분해되어 버린다면….

생각이 여기에까지 다다르자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가 이내 정리된 결론은 결국 영원히 내 것인 것은 없고 이 세상은 잠시 쉬었다가 가는 곳이며, 더 많이 나를 비울 수 있게까지 되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점,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 한 톨이 우리의 손톱 위에 오를 만큼의 확률도 안 되는 미물임을 깨닫는 순간 내 삶의 방향은 더 바람직한 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 깨달음의 순간들, 그 감사함, 그 기쁨, 그 순간의 평화가 어떤 순간이 닥쳐와도 나를 올바르게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음에 나 자신에게 고마울 뿐이며. 뉴욕 맨해튼에서의 시간도 힘차게 전진하며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一夜九渡河記(일야구도하기)’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넜다는 것인데, 연암 박지원은 눈을 감고 강을 건널 때의 느낌을 표현하며 내면의 생각에 의해 강물 소리는 제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비유하며 모든 것은 마음속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열하일기를 떠올리며 내 마음을 체크해 보자. 며칠 있으면 큰 명절이다. 미리 속도 비우고 마음도 비워 보자. 빈 속에 맛난 음식도 조금씩 먹어보고 비워 둔 그릇에 새해의 복된 시간들도 긍정·행복이라는 단어로 가득 채워 보기를 기원한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강사·예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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