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지역에서 녹색당이 승리하는 날
TK지역에서 녹색당이 승리하는 날
  • 경남일보
  • 승인 2014.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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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지난 여름에 유학시절 제2의 고향인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오랜만에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이 도시는 벤츠, 포르쉐 등의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계, 항공산업과 공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뿐 아니라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활약한 문화도시이며, 주요 포도주 산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명성에 비해 이곳 사람들은 매우 폐쇄적이고 엄격하며 심지어 고리타분한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정치판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이 지역 선거에서는 보수당이 늘 압승을 거두어왔다. 하지만 이번에 필자는 이러한 보수성의 변화를 감지 할 수 있었다. 첫째로는 이 동네 사람들의 밤 문화가 바뀐 것이다. 이전 같으면 다음날을 위해 집에 일찍 귀가하던 사람들이 여름축제에서 12시가 지나도 춤추며 노래하며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예상치 않은 변화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필자에게 그곳의 옛 친구가 얼마 전 녹색당이 이곳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독일 녹색당은 환경보존과 핵 폐기 등의 주장을 펼치며 1979년에 등장한 극진보세력이다. 기존 세대의 권위 등의 생활양식을 전면 부인하기도 했던 이들은 처음에는 극소수의 젊은 지지층만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사회적 지지가 확산되어 국회에 처음 입성하였을 때는 청바지, 운동화 그리고 노란머리 염색 차림으로 짝 다리를 짚고 연설을 하는 등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 와서는 연정을 통해 수권정당이 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상상도 못했던 이러한 약진은 이들이 제공한 사회적 철학과 비전에 기인한다.

녹색의 생각이 싹트기 시작한 1960년대는 전 세계가 냉전과 극단적 양극화에 빠져 있었다. 미국과 구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가 양분되어 핵무기 등의 군비경쟁에 몰두해 있었고, 세계 제3차 대전 발발 가능성과 이로 인한 지구의 자멸이 우려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은 이러한 명분 없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산물로 지목받아 반전 운동을 확산시켰다. 이에 대두된 친환경 녹색운동은 대립과 멸망 대신에 자연의 속성인 평화로운 공존, 화합, 지속가능성 등을 핵심 이슈로 내세웠다. 또한 사회적 갈등을 계층, 국적, 인종 간의 공생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으로 대체하자는 실천적 철학을 제시했다. 이로써 독일 사회는 소통과 화합 속에서 친환경 복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제 곧 다시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다시 한 번 극단적 갈등과 양극화의 몸살을 앓을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서기만 한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보수니 진보니 하지만 사실상으로는 지역 연고에만 고착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는 철학과 대안이 결여되어 있음으로 중도, 화합, 공존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이는 공천제 논란만 봐도 금방 나타난다.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이 많다 보니 칼자루를 쥔 공천자나 줄을 서려는 피공천자 그리고 이를 어이 없이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로 짜여 진 비정상적인 정치 역학구조는 어이없기 짝이 없다. 유권자보다는 오로지 공천과 그 권력에 눈이 멀어 있으니, 동일 사안에 대해서도 여당과 야당의 해석이 언제나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정치권이 이렇다 보니 극단적 이기주의를 표명하는 계층 간의 양극화와 갈등이 우리 사회에 심심찮게 수면 위로 불거져 나온다. 최근의 원전비리, 철도파업, 의료사태, 금융권의 정보유출 사태 등은 지속가능성과 대안이 없는 치우친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에 최근 ‘새 정치’를 표명하고 나오는 세력도 등장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도 시간이 지나면 구정치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단절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 내고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할 원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새로운 철학적 대안이다. 이에 필자는 한국의 녹색 사상이 TK지방도 집권할 날을 기대해본다.
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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