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림동 계곡 옛 이야기 속으로 맛 나들이
화림동 계곡 옛 이야기 속으로 맛 나들이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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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함양 이야기

용추폭포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정치가인 어사 박문수(1691~1756년)가 영남지방으로 암행의 길을 떠나기 전날 밤, 그를 전송하려고 온 친척 중 한 사람이 “경상도 함양에 가면 과부가 된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이 진사라는 자가 있는데…”라는 말을 무심코 했다. 이에 박 어사는 며느리를 보통으로 데리고 산다는 뜻이 아님을 짐작하고, 해어진 옷과 부서진 갓으로 초라한 차림새를 하여 이 진사의 마을을 찾아가 “이 마을에 이진사댁이 어디요?”하고 물으니, 마을 사람은 괴이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며 “제 며느리를 데리고 사는 놈이 무슨 진사요?”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 진사댁을 찾아 사랑에 과객으로 들기를 청하여 며칠 동안 동정을 살피며 이 진사와 그의 며느리와의 실제 행동을 정탐해보니 충분히 오해를 할만 했지만 사정은 소문과 달랐다.

사실은 혼자 된 젊은 며느리와 단둘이 큰 집에서 지내면서 안방에서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어, 첫닭이 울 즈음에 안채를 한 번 휘돌아보며 며느리 방 마루 앞에 가서 한 번씩 기침을 하여 술상을 받아 마셨는데, 이는 누에를 보살피다가 고단해 쓰러져 자는 며느리에게 누에의 밥을 주도록 하고, 누에를 치는 집에 술 냄새를 풍기는 것이 소독도 되고 좋을 것 같아, 해장도 할 겸 양잠에 좋은 방도라고 생각한 까닭에 이러지, 아무런 이상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박 어사는 마음이 언짢아져 전례 없이 농촌 동네에서 뜻밖의 어사출도를 하였고, 남의 일을 근거도 없이 추측만으로 중구난방 떠들고 공론비평해서는 못쓴다고 하였으며, 이 진사와 같이 고독한 삶을 살면서도 화목하고 편안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근면하게 생활하는 것을 본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훈계하였다. 이렇게 동네의 헛소문을 바로 잡아주며 이 진사같은 선비를 잘 본받아 지도를 청하면서 화평한 마을이 되기를 기원했단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일 거라고 예보된 것과는 다르게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는 날, 뜬소문을 바로잡은 암행어사 박문수 이야기를 떠올리며 시원하게 뚫린 3번 국도를 달려 함양의 제3경인 용추계곡으로 간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원시림이 좋아 산행을 즐기고 문화재를 관람하며 힐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옛날 안의현에는 세 곳의 빼어난 절경을 간직한 곳이 있어 ‘안의 삼동’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 용추계곡은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진리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라 하여 ‘심진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계곡 입구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심원정은, 유학자인 돈암 정지영이 지내던 곳에 그 후손들이 세워놓은 것으로, 수수하고 고풍스런 정자에 오르면 청신담과 층층이 포개진 화강암 무리가 한눈에 펼쳐져 마음까지 맑아진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오르면 계곡의 곳곳에 전설과 유래를 기록한 현판들이 세워져있으며, 더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 뒤로 신라 소지왕 9년에 각연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장수사 일주문이 외롭게 솟아있는데, 일주문만을 남긴 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복원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사찰의 흔적을 찾아 용추사로 오르면 절 아래에서 우레 같은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용추폭포가 있고, 계곡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내려 모여 이룬 물이 용호로 떨어지니, 화 난 용이 몸부림치듯 힘찬 물줄기는 사방으로 물방울을 튕겨 장관을 이루어, 폭포 앞에 서는 사람은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폭포에서 약 30분 정도 올라가면 상사평이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용추계곡의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으며 계곡 끝에는 용추자연휴양림도 자리하고 있다.
 
▲장수사 일주문.


포근한 날씨이지만 응달에는 잔설이 많이 있어 여유롭게 설경도 즐기며, 코끝으로 다가오는 맑고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점심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은 원조안의갈비로 간다. 갈비찜을 반찬삼아 밥을 먹을 생각으로 찜을 시키니 국물도 함께 나오는데, 아주 담백하고 깔끔하여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의 개운한 갈비국물로 입가심을 한 후, 양파 당근 오이 파 등을 큼직하게 썰어 넣어 만든 갈비찜을 가위로 잘라 한입 해보니 그 맛에 탄성이 저절로 난다. 부드러우면서도 은은하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너무 달고 짜거나 맵지 않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분위기도 오래된 한옥을 식당으로 꾸며 정원은 크지 않지만 온화한 분위기여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집이라, 근처를 지날 때 한 번쯤 들러서 맛을 보는 것도 좋겠다.

갈비찜을 맛있게 먹고 얘깃거리가 많은 안의 소재지를 잠시 걸으며 능욕을 당한 한 여인의 복수, 인색한 부자의 최후 등의 전설을 얘기하면서 시골장터도 둘러본 후 화림동계곡으로 차를 달린다. 약초실용정보관을 지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화림동계곡은, 해발 1508m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남강의 상류인 금천이 흘러내리면서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국민관광지에 이르러서는 반석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에 이르며, 가히 우리나라의 정자문화의 메카라고 할 만큼 넓은 암반위에는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으로 어우러진 곳이다.

계곡의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농월정은 선조 때 예조참판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 때 장렬히 전사한 지족당 박명부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곳으로 후세 사람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정자인데, 불타버려 안타깝지만 주변에는 수많은 반석들로 가득하여 너럭바위 위나 옆으로 쉴 새 없이 흐르는 명경지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농월정 에서 3km 정도를 올라가면 담록의 담 가운데, 바위섬으로 넓게 펼쳐진 암반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동호정이 우뚝 서있다. 보기만 하여도 빨려들 것 같은 짙은 담이 찾는 이를 섬뜩하게 하지만, 성리학자인 동호 장만리의 공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임진왜란 시 왕을 등에 업고 의주에서 신의주까지 피란을 하여, 후일 선조가 그 충절을 가상히 여겨 정려를 명하였으니, 황산마을 입구에 정려비각이 우뚝 서 있다.
 

안의갈비찜.



동호정을 뒤로하고 1km가량 더 오르면 또 하나의 선경 거연정이 눈앞에 나타나는데, 거연정은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옛 선비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것 같으며, 주위에서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고, 아치형의 화림교를 건너며 내려다보는 검푸른 소와 기암괴석은 거연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거연정의 조금 아래에 있는 군자정은 정여창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세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선비들이 계곡을 끼고 앉아 시문을 주고받았던 곳이라, 농월정터-동호정-군자정-거연정을 나무다리로 이은 6.2㎞의 길을 ‘선비문화탐방로’로 이름하여,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 계곡 및 정자의 자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였고, 조금 위로 오르면 얼음골도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며 송어회를 즐기기도 좋다.

화림풍류에 젖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계관산을 돌아 빼빼재를 넘어서며 남덕유산과 힘차게 뻗어나가는 은백의 백두대간길을 감상하며 백전면과 병곡면을 거쳐 함양읍으로 들어서 상림을 찾는다.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 선생이 이곳 천령군의 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 중의 하나이다.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 가에 자리 잡은 호안림이며, 당시는 지금의 위천이 함양읍 중앙을 흘러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기에,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처음에 이 숲을 대관림이라 하여 잘 보호하였으므로 홍수의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세월이 흐르며 중간부분이 파괴되어 지금같이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졌고, 하림구간은 취락의 형성으로 훼손되어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어 그 흔적만 남아있다.

상림은 120여종의 나무가 1.6km의 둑을 따라 9만9200㎡ 규모로 조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원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철을 통하여 그 절경을 볼 수 있어 언제 와도 좋다. 숲에 조성되어 있는 오솔길을 완주하고 잘 꾸며진 식당에서 함양의 정식으로 오늘을 마무리하려다, 갑자기 생각난 어탕국수에 마음이 끌려 평소에 즐겨 찾았던 생초의 제일식당으로 가, 걸쭉하면서도 깊고 시원한 맛을 내는 어탕에 야채와 함께 적당하게 잘 삶겨진 국수를 말아 내는 어탕국수와 멸치무침, 무생채로 오늘 하루의 즐거움을 배가했다. 함양, 둘러보며 소개할 것이 많이 있지만 이정도로 마무리 할 수밖에 없는 지면이 아쉬워 또, 다음을 기약한다.

/삼천포중앙고등학교 교사

 
함양 맛길
함양 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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