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3)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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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6)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3)
<44>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6) 
 
1990년대 초 개천예술제발전기획위원회가 구성되고 필자가 위원장을 맡아 첫 번째 축제 관련 세미나가 열렸다. 필자는 우리나라 민속학의 으뜸인 김열규 교수가 고성으로 귀향해 있던 터였으므로 발제자로 김교수를 초청했다. 개천예술제를 새롭게 끌고갈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위원회라 말하고 ‘축제와 개천예술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했다. 흔쾌히 지역의 현안에 대해 동참해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기회만 있으면 사양치 않을 것이라는 다짐까지 해주셨다.

이날 축제와 제의(祭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의 논지는 제의해 입각하지 않은 행사는 축제의 행사가 아니다라고 한 점이 위원들을 일깨워 주었다. 축제 집행부는 기간 동안에 행해지는 행사 중에서 과연 제의의 갈래에서 나온 본질 행사가 몇 개나 되는지 생각해 보라고 일침을 주었다. 그때 나온 말로는 그런 행사는 가장행렬 이외에는 없다라고 하는 말이 여기 저기서 흘러나왔다. 이 밖에도 경남문협, 경남시협, 국제펜 경남지역위원회 등 필자가 책임지고 있는 데서는 중심 발표자로 초대했고 또 필자의 개인 시집 출간기념회에도 모셨다.

김교수는 그의 ‘독서’를 통해 중학시절 문학작품 내용과 실제를 통합해 보고자 한 것이 드러나 있다. 시를 읽는데 웬 사랑이 그렇게 흔한지 연습해 보기로 했다. 친구와 그는 연애편지를 한통씩 썼다. 물론 상대는 가공의 천사 같은 여성이었다. 그 편지를 들고는 공원 근처에서 처음 만나는 젊은 여성에게 무조건 바치기로 서로 다짐했다. 우연히 맞닥뜨린 노처녀로 보이는 여인에게 편지를 바쳤다. 그런데 그녀가 하필이면 교장과 가까운 사이었다. 친구와 그는 조만간 혼벼락이 떨어질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교장은 친구와 그를 교장실로 불렀다. 두 사람은 들어가 고개 숙여 대죄했다. 그런데 교장은 전혀 뜻밖의 말을 했다. “카로사군! 자네 방에는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다지. 자네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다고 자랑을 하셨어. 그래서 네 담임선생께서도 네 방의 불이꺼질 때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읽곤 하셨다더군. 그래서 이걸 상으로 주는 걸세.”하곤 교장은 사탕통을 내주는 것 아닌가. 교장이 김열규를 보고 ‘카로사’라 부른 것은 자전소설 ‘유년시대’를 쓴 작가 카로사를 김열규에다 이입해 붙여준 것이다. 공업학교 교장으로서는 인문학적 사고에 넘치는 분이어서 김열규는 독서를 하면서 때론 이런 행운을 얻기도 한 것이다.

김열규는 별난 스승을 모시게 된 경력이 있다. 중학 5학년(고2) 때 일이었다. 어느날 일찍 학교수업이 끝나게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영화관에 들렀다. 사실은 들린 것이 아니라 잠입해 들어간 것이다.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들키면 정학처분을 받는 무지막지한 시대였다. (그래도 단속망을 피해 영화관 출입을 학원 가듯이 가는 필자의 친구가 있었다. 진주시내 P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을 때인데 같이 하숙하는 친구 중에 B라는 친구였는데 그는 저녁의 소정의 시간만 되면 빵모자 푹 눌러 쓰고 대문을 나섰다. 그가 가고 난 뒤 영어단어를 외고 있던 나는 불현듯 책꽂이에 꽃혀 있는 노트 2권을 찾아내곤 흝어 보았다. 거기엔 매일저녁 학원 가듯 가는 영화관의 영화제목과 주연, 영화사 이름 등이 노트 한 줄에 하루저녁의 프로가 단정히 기록되어 있었다.노트 2권이면 며칠밤 프로인가? 이 노트를 학생부가 입수한다면 B군은 고교 3년 내내 정학 중에 있어야 될 것 같았다. 3년이 무엇인가. 적어도 5년 정학을 받아야 하므로 중학교 전학년 과정을 박탈받아야 할 것이었다.) 김열규 교수는 그런 시대를 무지막지한 시대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마추어들이 극장에 가면 꾼들이 다니는 빨치산의 ‘트’와 ‘루트’에 해당하는 노하우가 없으므로 그대로 걸리기 일쑤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뒤에서 누가 김열규의 뒷덜미를 잡았다. 약골인 김열규에게는 엄청난 힘으로 느껴졌다. 문밖에 끌려 나와 보니 선생이 아니라 험상궂은 깡패였다.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는데 김열규 등은 어느 건물 앞에 섰다. ‘XX청년단’(?)이라는 큰 간판이 걸려 있었다. 저들은 극장에서 잡아온 학생들을 ‘학생부’라 적힌 작은 방으로 밀어넣었다. 고꾸라지다시피 비틀대다가 간신히 똑 바로 섰는데 김열규의 눈 앞엔 우락부락하게 생긴 건장한 청년이 버티고 앉은 게 보였다. 그를 그의 수하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무슨 이리떼 같았다. 한 미지의 청년은 입가에 침이 번지고 있었다. 그 청년이 빠는 혀가 뱀의 혀처럼 나풀댔다. 바로 그 청년이 송곳 같은 어금니를 드러내면서 김열규에게로 다가왔다. 김열규를 미리 끌려와 있던 또래들 옆에 꿇어앉혔다. 그 중에는 5학년인 김열규가 가장 선임 학생이었다.
“야. 이 새끼 너부터 혼좀 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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