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유감
신춘문예 유감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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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그동안 신춘문예를 통해 많은 신인들이 문단에 등단했지만, 연례행사처럼 표절 시비가 되풀이돼 왔다. 실제로 표절이 인정돼 당선이 취소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올해도 문단의 모 중진 시인이 모 신문사의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에 대해 표절에 대필 의혹까지 제기해 작은 파문이 있었다. 그러나 재심에도 당선 자체가 취소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단에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다. 한 작품의 당선 취소 여부를 떠나 등단제도 및 창작 자세와 관련해 근본적인 문제를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후기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곳곳에 시인들이 넘쳐나고 문예지와 문학단체가 범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오프라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좋게 말하면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다품종 소량생산시대에 걸맞은 문학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이쯤 되면 등단이 무력화될 만도 한데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 등단제도가 강력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이제 입도선매(立稻先賣)도 바닥을 드러낼 만도 한데 저간의 사정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은 과연 문학의 백가쟁명시대인가.

과거 오랫동안 문예지의 추천과 신춘문예가 주도했던 등단제도의 변화는 이미 80년대 무크지와 동인지들에 의해 시작됐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민중문학 진영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 그들이 문단 주류가 됐지만 등단의 폐습은 더 공고화됐다. 결국 작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어디에도 등단한 적이 없는 귀여니의 시집도 엄연히 독자가 있고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층위의 독자들이 자기 취향에 따라 판단하고 수용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성과 다른 차원의 작품성은 또 누군가에 의해서 평가받을 것이다. 다양한 경로의 발표를 통해 다양하게 수용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윤곽은 드러날 것이다. 창작에 있어 일정한 자격기준을 운위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사고방식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신춘문예는 대표적인 신인등용문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이다. 외국에는 특별한 등단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발표나 출간을 통해 그냥 작품활동을 하면서 자기 영역을 넓혀갈 뿐이다. 과거 보수적인 문학단체와 문예지가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해서 그렇지 우리의 등단이라는 것은 그 자격을 부여하는 단체나 매체의 자의적인 판단이지 절대적인 준거가 될 수 없다. 원래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등단 절차가 언제부턴가 실질적인 위상으로 제도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제 과거 소수의 지식인 중심에서 벗어나 문학창작이 대중화되고 수많은 매체가 난립하는 시대에 등단 자체만으로 문인을 대접하고 인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는 것은 작가 자신이 추구해야 할 몫이다. 지속적인 창작의 과정을 통해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처럼 등단이 시인이나 작가에게 임의적이고 편의적인 제도이자 일과성 과정에 불과함에도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문학인들 스스로 특별한 월계관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등단을 위한 개인 창작교실이 범람하고,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에 이상한 카르텔이 형성돼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우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게 되는 것이다. 순수해야 할 창작에서도 특별과외가 존재한다니 과연 과외 천국답지 않은가. 심지어 자기 세계를 구축해야 할 기성문인들조차 새삼 빛나는 한 작품을 기예로 다듬어 각종 등용문과 상금을 두드리는 요상한 현상까지 나타나는 형국이다. 이것이 모두 시대에 맞지 않는 등단제도의 폐습이 아닐 수 없다.
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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