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해안 기름범벅에 어민들 망연자실
청정해안 기름범벅에 어민들 망연자실
  • 차정호/강진성
  • 승인 2014.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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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남해 기름제거 현장을 가다
기름제거 주민
남해군 서면 염해마을 한 주민이 하천 제방에 뭍은 기름자국을 닦아내다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31일 여수 삼일항 낙포부두에서 유조선이 송유관과 부딪히면서 유출된 기름이 남해까지 덮쳤다. 기름유출 발생 하루뒤인 지난 1일 오전 남해군 서면 장항마을 앞바다에서 기름띠가 발견된 뒤 4일 현재 남해 해안으로 모두 밀려온 상황. 북서풍이 강하게 불면서 기름띠 이동을 재촉했다.

남해군은 가천~노량해변까지 약 30km에 이르는 해안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해 서면을 중심으로 여수와 마주보고 있는 해안가 어민들은 모두 출어를 포기했다. 어민들은 그물대신 흡착제를 손에들고 기름을 닦아내기에 바빴다. 가장 피해가 큰 염해마을과 유포마을은 지난 1995년 씨프린스호의 악몽을 되새기며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출어포기하고 기름제거나선 염해마을

서면 사상수산물유통센터에 마련된 남해군유류방제대책 종합상황실. 남해군과 해경이 방제작업 지휘에 분주한 모습이다. 평소같으면 어선들로 가득차야할 서면 앞바다에는 해경 방제정과 경비정만 떠 있었다. 방제정은 기름을 휘발시키기위해 바닷물을 뿌리느라 쉴 틈 없었고 통영해경과 여수해경뿐 아니라 창원·부산해경까지 모두 집결했다. 바다에 떠있는 경비정 49척, 방제정 11척 등 총 60척 규모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하기 충분했다.

종합상황실의 안내로 상황이 특히 좋지않다는 서면 남상리 염해마을로 향했다. 해안가에 들어서자마자 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을 주민 수십명은 해경이 나눠준 작업복을 입고 항구 안쪽 해변 청소에 바빴다. 입춘답지 않은 칼바람에 어민들의 얼굴은 이미 상기됐다.

주민 오창원(69)씨는 “1일부터 주민들 모두가 나와서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 작업덕분에 모래사장은 어느정도 깨끗해진 상태. 하지만 오씨는 “오전부터 치워서 그런데 물이 한번 들어왔다 나가면 또다시 기름범벅이 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주민들은 “씨프린스호 사건때보다는 그나마 상태가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

마을 한쪽에는 흡착제와 기름이 뭍은 쓰레기가 담긴 포대자루 수십개가 쌓여있다. 항구가 시작되는 곳으로 이동하자 기름냄새가 진동했다. 암석에는 시커먼 기름때가 이미 깊숙히 배어있었다. 그앞으로 기름유출 사고현장인 여수 낙포부두가 선명히 들어왔다. 직선거리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유류저장고아래 선착장일부는 유조선에 부딪혀 바닷속으로 곤두박질 한 상태다.

낙포부두를 바라보던 오씨는 지금 당장 방제작업보다 미래가 더 걱정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을 바로 건너에 기름탱크가 저렇게 많다보니 언제 사고가 또 터질 지 모른다”며 불안해 했다.

오씨의 안내를 받아 내일 작업할 곳이라는 해안가로 이동했다. 자갈로 이뤄진 300여m 해안가는 기름폭탄을 맞은 듯했다. 자갈을 뒤집자 아래까지 모두 기름으로 오염돼 있었다. 오씨는 “이걸 언제 다 하나. 지금 (마을 앞에서)하고 있는 작업은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마을 도랑에도 방제작업중인 주민들이 보였다. 하천 제방에는 밀물때 들어온 기름자국이 어른키만큼 남아있다. 대부분 고령인 어민들은 기름냄새에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 주민은 “집에 돌아가더라도 마당까지 기름냄새가 나 저녁에는 방에만 들어가 있다”고 했다.

설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잡으려했던 낙지통발은 아예 올려보지도 못하게 됐다. 낙지통발은 2월부터 4~5월까지 염해마을의 주수입원이다. 한 주민은 그물과 잇감으로 집마다 수백, 수천만원씩 들였는데 모두 허사가 됐다며 울먹였다. 기름유출을 방제하던 작업선들이 통발부표마저 쓸어가는 바람에 통발의 주인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다.

다음달부터 들어갈 바지락과 미역채취도 이미 물건너 갔다.

◇“우수 체험마을 선정이 얻그제인데…” 절망의 유포마을

염해마을 바로 옆에 위치한 유포마을. 피해상황은 비슷했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갯벌 체험장에서 주민들이 기름제거에 한창이다. 유포마을 주민들은 취재진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어촌체험마을이라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유포마을은 지난해 전국 우수어촌체험마을로 선정됐다. 그 기새로 내달부터 본격적인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기름으로 오염되면서 주민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체험갯벌이 오염되면서 바지락뿐만아니라 마을 자랑인 우럭조개도 못잡게 됐다. 민박가구만해도 12가구에다 체험으로 인한 수입이 솔솔찮았다. 이번 피해로 연간 1억원에 달하는 마을소득이 날아간 셈이다.

한 주민은 “수산물이야 어느정도 지나 시장에 출하하면 그만이지만 체험마을은 사람들이 오염됐다는 이미지 때문에 쉽게 명성이 회복되지 않는다”며 “마을 사람들 걱정이 큰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언론에 자꾸 알려져봐야 우리마을에 도움이 안된다. 빨리 예전모습으로 돌아와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 뿐”이라고 덧붙였다.

차정호·강진성기자

 
기름범벅된 해안가
4일 오후 남해 서면 염해마을 주민 오창원씨가 여수에서 밀려온 기름으로 범벅이 된 해안가 자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왼쪽 위는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여수 낙포부두로 염해마을까지는 불과 3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마을하천까지 들어온 기름때
남해군 서면 염해마을 하천 제방에 밀물때 밀려온 기름때 자국을 주민이 닦아내고 있다.

 

오염된 남해 염해마을 하천
남해군 서면 염해마을 하천 제방에 밀물때 들어온 기름때 자국이 어른 키 높이만큼 선명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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