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歸省) - ‘돌아가서 살핌’
귀성(歸省) - ‘돌아가서 살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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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욱 (정신과의사·경상의대 명예교수·마산동서병원 부원장)
우리는 왜 귀성(歸省)을 하는가. 특히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왜 그토록 힘든 소위 ‘귀성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줄지어 고향을 찾아가는가. 그것은 아마도 동물의 귀소본능(歸巢本能)과 같은 것이 우리 인간에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도 늘 마음 한구석에 자신의 근원인 부모와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갖고 산다. 특히 삶이 외롭고 힘들어 휴식과 위안이 필요할 때, 또 늙고 병들어 이제는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려고 할 때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과 달리 근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또 다른 욕망도 갖고 있다.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구심력이라면, 근원에서 멀어져 자유로워지려는 욕망은 원심력인 셈이다. 지구가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 때문에 일정한 궤도를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태양 둘레를 돌 듯 인간의 삶도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소망과 근원에서 멀어지려는 욕망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안정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한편 인간의 귀성 활동은 그저 생명유지와 종족보존을 위해 본능에 따라 단선적으로만 이뤄지는 동물의 귀소 활동과는 달리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과 문화가 귀성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를 풍미하는 편의주의, 개인주의, 현세주의, 물질주의, 및 황금만능주의가 귀성에도 나쁜 영향을 미쳐 많은 역기능이 생겨났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소위 명절증후군과 애꿎은 부모님들이 고향을 떠나 자식을 찾아오는 역귀성(逆歸省)이다.

잘못된 문화가 빚어낸 명절증후군이나 역귀성은 그야말로 귀성의 잘못된 한 단면, 즉 부작용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조금만 참고 소통하면서 노력하면 틀림없이 극복될 수 있는 것들이다. 아울러 명절에 멀쩡한 고향을 놔두고 해외에서 방황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일 년에 몇 차례씩 고향 가까운 동해바다에 나가 북녘을 향해 목 놓아 울면서 부모님을 불러 본다는 실향민들을 생각해서라도.

어쨌든 귀성의 본뜻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피는 것’이다. 늙으신 부모님과 가까운 어르신들, 조상님들의 묘,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산천, 즉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근원을 찾아가 근황이 어떤지 살피고 돌보며, 아울러 그 안에서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과 본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되찾고 힘과 용기를 얻어 새로운 출발과 도전을 준비하는 일, 그것이 바로 귀성의 진정한 의미인 것이다. 그리고 또 이 참다운 귀성은 ‘미혹(迷惑)이 없는 본성(本性)으로 돌아감’이라는 또 다른 귀성(歸性)과도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손진욱 (정신과의사·경상의대 명예교수·마산동서병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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