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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품은 강, 흐르는 것은 산인지 강인지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89>천반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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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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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반산 최고의 경치, 발 아래 천길 낭떠러지에 금강이 굽이쳐 흐른다.
 
 

정여립(1546~1589)은 진안 천반산 앞 죽도에서 죽었다. 자결을 했는지 죽임을 당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논란은 있으나 그는 역사적으로 모반의 아이콘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내력은 이렇다. 당초 스승인 이이를 비롯해 성혼과 함께 서인세력이었으나 살아 있던 권력 동인에 아부했다. 하늘처럼 모셔야 할 스승 이이가 세상을 뜨자, 결국 배신하고 동인으로 배를 갈아탔다. 동시에 서인을 비판하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선조는 그를 못 마땅히 여겼다. 그런 이유로 낙향했다. 그러나 조용히 살지 않았다. 능력 있는 전라도 출신 재상이 낙향했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멀리 황해도 세력까지 가세했다. 이를 계기로 지위고하, 지역 장소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는 대동계가 탄생했다. 이들은 죽도와 천반산에서 군대조직을 갖추고 무예까지 닦았다. 실제 전쟁에 나서 왜구를 격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1589년(선조 22)조정에 ‘정여립이 역모를 도모하고 있다’는 밀서가 날아든다. 강한 군대를 이용해 곧 조정을 칠 것이라는 첩보였다. 이에 선조의 관군은 정여립의 아지트 천반산과 죽도를 기습해 궤멸시키자 정여립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자결한다.

이 사건은 조선 최대의 참극을 만들어 냈다. 서인들은 정여립의 역모를 빌미로 동인을 대대적으로 척결한다. 행동대장 송강 정철을 비롯 구봉 송익필이 동인의 씨를 말리는 작업을 주도해 1591년까지 3년 동안 1000여명을 죽인다. 기축옥사다. 훗날까지 전라도가 반역향으로 몰리는 계기가 됐다. 정여립이 배신의 아이콘이 돼버린 역사 기록이다.

정여립의 역모와 최후 등 전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천반산과 죽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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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이 자결, 혹은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구량천 금강 합수지의 죽도풍경.

▲천반산은 전북 진안군 동향면 성산리와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경계에 있다. 높이 647m. 낮아도 비범한 산, 또한 절경이다. 무주 안성에서 발원한 구량천(대양)과 금강이 산을 호위하듯 에둘러 흘러간다. 주봉은 깃대봉, 고스락 서쪽에 성터가 있다. 북쪽은 깎아지른 절벽, 남쪽은 평평한 사면이다. 정여립이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장소와 우물이 남아 있다. 송판서굴과 할미굴이 있다. 산의 형태가 소반처럼 생겨 천반이다. 장군바위, 마당바위, 뜀바위, 죽도 등 정여립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

▲산행코스는 섬계마을→섬계가든 주변 들머리→첫번째 능선→천반산(깃대봉)→전망대→말등바위→성터→돌솥터→가막리들→구량천(대양)·금강 합수지 죽도→장전마을 49번도로→섬계마을 원점회귀. 총거리 10.72km(도로 트레킹 4km포함)에 6시간(휴식 포함)소요.

▲오전 9시 2분, 섬계마을주차장에 도착한다. 마을 앞으로 강물이 돌아 흘러 섬처럼 돼 섬계이다. 밀양박씨에 의해 형성됐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걸어 섬티교 약간 못미친 지점 ‘가든 섬계산장’ 노란 간판이 있는 민박집 근처까지 간다.

민박집 못 미쳐 커브가 시작되는 곳 도로 왼쪽에 산길이 열려 있다. 빛바랜 안내판과 ‘천반산(깃대봉)2.92km, 천반산(성터)4.12km’. 이정표가 서 있다. 정상과 능선에 직접 치오르는 길은 아니며 산허리를 돌아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가든 앞에 구량천은 S자 형태로 휘돌아간다. 거대한 암벽이 물길을 막아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형국이다.

산허리를 2∼3개 따라 돌면서 고도를 높인다. 등성이에는 온통 갈참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겨울인데 눈은 없고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등산로를 덮고 있다. 간간히 흩날리는 눈발을 제외하면 겨울 속 가을이라 해도 좋을 풍경이다.

40분만에 이정표가 있는 첫번째 능선 갈림길에 올라선다. 왼쪽이 윗열원리로 가는 길, 오른쪽이 천반산 정상 깃대봉으로 간다. 산 아래에 지나온 섬계마을과 섬계산장가든, 섬티교, 휘돌아가는 강줄기가 보여 산행 중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고도를 갑자기 높인다. 정상가는 된비알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중간에 집채 만한 바위군에서 휴식한 뒤 오름길을 재촉한다. 고스락 직전에는 급경사 탓에 로프에 의지해야 된다.

오전 10시 30분, 출발 1시간 30분만에 천반산 정상 깃대봉에 닿는다. 공원 벤치가 놓여 있다. 낙엽, 나신의 나무, 벤치, 흩날리는 눈발 아무래도 늦가을 풍경이다.

서쪽 멀지 않은 곳에 생경한 풍경이 하나 들어온다. 놀랍게도 명산 마이산의 실루엣이다. 북쪽에 있는 운장산 구봉산에서 봤던 모양과 비슷하다. 마이산 실루엣은 천반산 성터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형태를 달리하며 이기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오전 11시께 바위 전망대에 선다. 전망대를 중심으로 왼쪽은 금강의 물줄기가 흘러들어오고, 오른쪽엔 덕유산에서 발원한 구량천이 흘러들어온다. 2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이 이번 산행의 날머리이자 죽도가 된다. 합수한 강은 곧장 용담호를 거쳐 금강을 완성한다.

오른쪽 구량천의 풍경이 기이하고 아름답다. 유년의 동요가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나이 들면 저 강가 언덕에 집짓고 살고 싶다” 말하자 산우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뭐, 물고기씨 말릴 일이 있냐” 며 통박이다. 이 금모래알 반짝이는 강변 언덕집이 잘 보이는 곳은 등산로 상의 말바위다. 정여립이 말을 타고 훈련을 했다거나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거대한 바위가 말등처럼 생기긴 했다. 바둑판은 안보이고 윷놀이 말판은 있다. 말바위를 지나다보니 이 산과 물길의 형태가 특이한 것을 알 수 있다. 물은 산을 넘지 않고 산도 물을 넘지 않으며 감입곡류 고부랑 고부랑 흘러간다. 산과 물이 신기할 정도로 사이좋게 어울려 흘러간다. 오른쪽 구량천 방향은 천길 낭떠러지다. 큰바위 하나를 굴리기라도 한다면 한참 후에 ‘풍덩’ 소리를 내며 떨어질 것 같다. 그래서 이곳 지형이 천혜의 요새다. 요새에 성터가 있다.

오전 11시 20분, 출발 2시간20분 만에 성터에 닿는다. 성은 돌로 얼기설기 쌓은 일부만 남아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보인다. 이정표는 하산 목적지 ‘죽도 2km’를 가리킨다. 죽도 방향 말고 왼쪽으로 틀어 약 200m정도 가면 정여립이 군사 훈련을 시켰다는 훈련터 혹은 돌솥터가 있다. 넓은 공터에 베개만한 돌들이 방형으로 쌓여 있다. 성터쪽으로 되돌아와 오른쪽 구량천을 보면서 하산길을 잡는다. 오른쪽은 천길 낭떠러지. 왼쪽은 소반처럼 평평한 사면이다. 여기 풍경은 하찮은 것이라도 모두 소중하게 느껴진다. 발끝에 채이는 낙엽 한줌, 작은 돌 하나, 스치는 나뭇가지 하나, 들이키는 공기 한모금도 모두 소중하다.

이번에는 왼쪽 천길 발 아래 이 산 최고의 전망이 펼쳐진다. 금강이 굽이쳐 흐른다. 역동적이다. 오금이 저리고 머리가 혼미해진다. 절경에 취하고 아찔함에 현기증이 난다.

오전 11시 40분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길 300m지점에 자연 쌍굴 송판서굴이 있다. 큰 굴안 샘은 위장병과 폐에 좋다한다. 과거 굴의 주인공은 송보산선생이다. 그는 정여립이 세상에 없던 1449년(세종 31년)예조판서에 올랐다. 1438년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권력을 잡자 ‘너희들끼리 다해 먹으라’며 이곳에 와서 은거했다. 그래서 송판서굴이다. 부인은 할미굴에 기거했고 훗날 정여립도 사용했다 한다.

거슬러 되돌아와 능선 상에 정여립이 말을 타고 날았다는 뜀바위를 지나면 고도가 낮아진다. 엄청나게 큰 무덤군 옆을 지나고 죽도를 향해 꼬리를 감추는 천반산의 지세 따라 내려선다.

오후 2시 30분 숲을 헤쳐 가막리들에 닿으면 강가에 깎아지른 절벽 죽도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다. 강이 에워싸 섬처럼 됐다 해서 죽도다. 정여립이 죽은 곳이다.

역사는 승자편의 기록이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장막 뒤에 가려진 패자의 한, 진실은 무엇일까.

남하정의 동소만록에는 정여립 최후에 대한 다른 기록도 있다. 그가 죽도에 놀러 갔는데 선전관과 진안현감이 죽인 후 자결한 것으로 꾸몄다는 내용이다. 그의 죽음과 기축사화는 역모가 아니라 서인의 음모라는 얘기다.

물론 이도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다만 그가 생시에 한 말로 정황의 유추는 가능하다. “천하 공물, 즉 어느 누구라도 능력이 있으면 왕이 될 수 있다.”는 핵폭탄 발언이다.

‘역모와 음모’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 전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반산과 죽도는 예전처럼 우뚝하고 강물은 희한하게도 꼬불꼬불 잘도 흘러간다.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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