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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소식에 찾아나선 성씨고가(50)비련의 여인 성혜림의 본가를 찾아서
경남일보  |  you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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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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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고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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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륜을 거슬리는 역천의 만행이 남북이산가족들을 피눈물 지게하며 기어코 가슴에 또 한 번의 대못을 박게 할 것인가 심히 불안하였으나 상봉이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한다. 혈육의 상봉은 정치적의 타협거리도 아니고 거래나 흥정의 대상이 아니며 오로지 하늘의 뜻인 천륜이다. 전주의 영산 모악산 자락에는 김일성 주석의 시조 묘인 김태서공의 묘가 있고, 김정남의 외가 선영은 경남의 창녕에 있고 김정은 위원장의 외가 선영은 한라산 자락에 있다. 발길 따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의 외가이자 그의 생모 성혜림의 본가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

중부내륙고속도로인 창녕IC에서 요금소를 나와 좌회전을 하여 창녕읍 들머리인 오리정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우포2로인 1080지방도로를 따라 우포늪으로 흘러드는 토평천의 대지교 앞에 닿으면, 뒷동산 자락을 깔고 앉은 모산마을을 마주하는데 낙락장송이 빼곡한 뒷산의 중심부에 왕릉과도 같은 커다란 분묘가 한눈에 들어온다. 창녕성씨의 시조 묘소이다.

대지교를 건너서 토평천을 따라 오르면 물계서원이 있다는 안내판이 섰는데 우선 석동마을 성씨고가부터 찾을 요량으로 대지면 사무소 앞을 지나서 마을 벗어나자, 이어지는 들녘은 끝을 가늠하기조차 싶잖게 드넓게 펼쳐졌고, 대지초등학교 앞 도로가에 화려하게 단청을 입힌 꽤나 큼직한 비각의 날렵한 풍채가 예사롭지 않아 가던 길을 멈췄다.

정갈하게 단장을 한 뜨락을 깔고 “고려충신보문각정절공성선생신도비”라는 현판이 붙은 홍살의 비각 안에는 화강암 빗돌의 웅장함에다 팔작지붕의 정교한 옥개석이 균형미를 이루는데 그 품위가 당당하고 근엄하여 범상치 않고 위엄차다. 빼곡한 세필의 비문상단에 “고려충신보문각직제학” 이라고 음각된 전서체의 비명은 또렷한데, 비문은 세필이라서 홍살 밖에서는 판독이 어렵다. 공양왕 때 보문각직제학의 벼슬에서 조선이 건국되자 관직을 버리고 불사이군의 뜻을 지키려고 만수산으로로 들어가 여생을 마친 두문동 72현중의 한 분으로서, 고종10년에 그 충절이 인정되어 정절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고려충신성사제신도비”로서 경남도문화재자료 24호라고 안내판이 부연하여 일러준다.

비각을 나서자 들판 건너 빤하게 보이는 언덕배기의 짙푸른 대숲을 등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추녀를 맞대고 겹겹으로 촘촘하게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 앞으로 널따란 주차장이 깔끔하게 마련돼 있고 높다란 기단위에 우뚝하니 커다란 양파의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1909년 이곳 성씨문중의 성찬영선생께서 양파재배와 채종에 성공하여 6·25직후 농가들이 가난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보리 대신 환금작물(換金作物)로 재배를 적극 권장하여 부농지역으로 만들었고, 60년대 말에는 6000여 농가에 1000여 헥타르로 재배면적이 늘어나 지금은 전국 최고의 양파주산지로 일구어 냈다니 배고픔의 설움을 겪지 못한 이들이야 가난의 처절함을 어찌 알랴만 선각자의 깊은 뜻에 고개가 숙여졌다.

마을로 들어서자 우람한 솟을대문이 담장으로 이어졌고 너머다 보이는 한옥들의 용마루가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껏 멋스럽게 한일자(一)를 그었는데 겹겹의 추녀가 손에 손을 잡은 듯이 어깨를 사이사이로 맞대며 도란도란 깊은 숙의를 하는 듯하다. 문이 잠겨있어 담장 밖을 이리저리 맴돌면서 까치발로 기웃거리는 필자의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관리인이라는 백재민씨가 경남도문화재자료 355호인 성씨고가에 이어 성씨사가까지 안내를 하는데 몸에 배인 반듯한 몸가짐과 겸손함이 옛 선비를 만난 듯하다.

솟을대문으로 들어가 문간채가 붙은 안대문을 들어서자 뜰을 마주하고 대여섯 칸의 기다란 아래채가 서로를 마주보고, 누마루가 딸린 널따란 마루청에 아름드리 둥근 기둥의 안채는 우람한 크기가 웅장하건만 위압적이 않으면서 근엄하고, 쌍 도리를 받힌 단출한 공포로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온화하고, 들기름을 먹인 것 같이 반들거리지도 않으며 검소함이 묻어나고, 간결하고 절제된 짜임새가 그저 중후한 품격으로 고고한 옛 멋을 흠씬 풍긴다. 석가산을 품은 정원의 연못인 한반도모양의 반도지는 그림같이 고요한데, 등 굽고 허리 굽은 백년노송의 그늘이 사랑채인 구연정을 주렴처럼 가리고, 뒷산의 짙푸른 대숲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아석헌, 석운재, 경근당, 청수당 등 현판이 붙은 당우가 수를 가늠키가 헛갈리는데, 쪽문으로 이어지는 넷 집의 한옥이 33채의 200여 칸이라니 온종일을 둘러봐도 못다 볼만한 한옥마을을 이루고 있다. 한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이고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의 생가로 알려졌었는데 그의 조부가 대를 이어 살던 집이고 보면 본가라고도 할 만하며 김정남의 외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게다. 북한정세가 격변하고 있어 김정남과 한솔부자가 국제미아라도 되면 어쩌나하고 염려스럽다. 삼대세습의 부당성을 주장한 것처럼 역사의 증인이 되어 평화통일을 앞당길 수 있게 세계여론에 큰 힘이 되어주길 바랄뿐이다.
 

물계서원



성씨고가를 나와 물계서원을 찾아 왔던 길을 잠시 거슬러서 대지초등학교 정문 앞을 지나자, 주산마을 뒷산이었던 울창한 솔숲의 동산아래에 창녕성씨의 맥산재가 자리를 잡았는데, 잠겨 진 대문 안의 뜰에는 수령600년이라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삭은 데가 하나 없이 건재하고, 솔숲이 울창한 맥산 정수리엔 창녕성씨의 시조묘가 건너다보이는 화왕산을 마주하고 웅장하게 자리를 잡았다.

맥산재에서 고속도로 옆으로 난 좁다란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만 가면, 골짜기 하나를 통째로 가득 메운 십여 동의 고래 등 같은 목조와가의 물계서원이 널따란 주차장을 마련하고 홍살문을 하늘높이 앞세웠다. 단장된 뜨락이 더없이 정갈한데 웅장한 이층 누각의 무변루가 이현문이라는 편액을 단 문루이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협문으로 들어서자 물계서원이란 편액을 단 우람한 강당이 안마당을 굽어보며, 좌우로 동재와 서재 그리고 정조대의 명문명필인 문신 이복원이 배향성현의 행적을 찬하고 조윤형이 썼다는 원정비의 비각이며, 숙종조에 창건되어 이원과 중수로 새로이 단장된 당우에서도 숭고한 옛 정취가 묻어나는데, 솟을삼문인 현도문을 들어서면 맞배지붕의 단청이 화려한 숭덕사가 근엄하게 자리를 잡았다.

다시 옷깃을 여미고 숭덕사에 들자 널따란 마루청을 깔고 전면과 좌우로 가지런하게 위패함이 모셔 졌는데 제향일에만 강신하므로 21위의 배향선생을 안내문에서 익혔기에 큰절로서 예를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시중 성송국·정절 성사제·매죽 성삼문·문두 성담수·청송 성수침. 21위라니 어쩌면 성씨일문에서 이토록 많은 서원배향인물이 나셨단 말인가! 구휼과 후학육성 등 적선과 공덕이야 말로는 다할 수 없거니와 충효절의와 선각성현이 그 얼마이며 절의충절 중에서도 재종간에 사육신과 생육신인 성삼문선생과 성담수선생을 삼척동자인들 어찌 모르랴! 선생의 ‘절의가’가 가슴속을 헤집는다. 줄잡아서 줄서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오늘의 정계사가 낯 뜨겁고 부끄럽다.

독야청청 높은 절의 만대불후 유훈주신

절의가의 깊은 뜻은 천추만대 교훈되어

보민애국 근간으로 만고불멸 하오시니

삼천리 구곡산천 만고상청 하오소서.

설익은 심사를 아뢰고 두고두고 새겨야 할 선생의 깊은 뜻을 가슴깊이 묻으면서 숭덕사를 나서자 백설이 만건곤 하려는지 희끗희끗 눈발이 하늘가득 흩날린다.

/지역문제연구소장
 

▲맥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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