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는 달집에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마음
활활 타는 달집에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마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보농사꾼의 귀농일지> 달집 태우기
설 연휴부터 영동지방에 내리기 시작한 폭설이 열흘 넘게 계속되면서 각가지 기상관측 기록을 갈아치웠다. 쌓인 눈의 양 뿐만 아니라 열흘 넘게 쉬지 않고 눈이 내리면서 미처 눈을 치우지 못해 피해를 더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눈 무게를 못 이겨 축사와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이 주저앉고 도로에 쌓인 눈이 교통을 마비시켜 일상생활에 불편이 크다고 한다. 다행이 우리지역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 큰 피해는 면했지만 더 큰 기상이변의 서곡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 금요일이 정월대보름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날을 설만큼 중요하게 보내며 오곡으로 지은 밥과 나물을 먹고 보름달을 향해 한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우리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 풍습 중 하나인 달집을 태우는 행사를 공동으로 가졌다.

청년회에서는 달집을 짓기 위하여 아침부터 인근 대밭에서 대를 잘라오고, 차로 짚과 태울 나무를 실어 날랐다. 3~40년 전 어릴 때 집집이 찾아다니며 대나무와 짚단을 모아 같이 달집을 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나무가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라 대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지금은 보이는 대로 잘라 와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 가장 쉬운 일이 되었다. 그때는 잘라 줄만한 대나무가 없다며 대신 짚단을 건네줄 정도로 흔했던 짚은 오히려 돈을 주고 사와야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한 탓이다. 예전에는 대나무를 얼기설기 세우고 빈 공간을 솔가지와 짚으로 메웠던 것을 지금은 키가 큰 대나무만으로 달집을 지었다. 달집이 잘 타도록 중간 중간에 짚단을 끼우고 가운데 마른 나무를 쌓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정월대보름 달이 떠오를 때 달집을 태우는 것은 액을 쫓고 복을 부르는데 있다고 한다. 달집이 활활 잘 타오르면 그 해 풍년이 들고 잘 타지 않거나 꺼져 버리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한 달집을 태울 때 절을 하면 건강을 지키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대나무가 탈 때 터지며 나는 소리는 잡귀를 쫓아낸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금년에는 구름이 동쪽 하늘에 끼여 보름달이 뜨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기상청에서 예보한 달뜨는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를 지내고 사물놀이로 흥을 돋우었다. 불은 예보된 시간에 맞추어 마을 이장과 대표들이 달집에 댕겼다. 마을 앞 안산 꼭대기에 올라가 달뜨는 모습을 보고 불을 붙였던 옛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구름이 낀 날이면 달뜨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어느 한 마을에서 연기가 올라오면 따라서 불을 붙이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다.

불이 사그라지면 불이 붙은 상대를 아들이 필요한 집 부엌까지 옮겨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기원도 주었다. 프라이팬이 없던 시절이라 부름 대신 흔했던 콩과 쌀을 숱 다리미에 볶아 먹기도 했다. 사그라진 불을 이용하여 콩을 볶아먹는 대신 돼지고기를 구워 음식을 나누는 잔치가 벌어졌다. 준비한 음식으로 술잔을 나누며 우리 마을 주 작목인 배농사가 자연재해 없이 잘 되기를 염원했다.

곧 있을 매실묘목 심을 곳을 둘러보고 점검을 해 보았다. 지난 며칠 추위에 겉흙이 얼어 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예정했던 나무 심는 일정을 땅이 녹은 뒤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주초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으니 비 내리는 양을 보고 날을 잡아야 될 것 같다.

밭을 둘러보다 발끝에 무언가가 밟혀 파보니 당근이었다. 지난 가을 작고 볼품이 없어 버려두었던 당근이었는데 뽑아 맛을 보니 향기도 좋고 먹을 만했다. 아내에게 일렀더니 단숨에 가서 뽑아왔다. 주변의 고구마 밭을 겨우내 파 뒤집어 이삭을 파먹던 멧돼지가 파먹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오래전 제주도에서 겨울에 당근이 자라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이곳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잎은 얼어 죽어도 땅속뿌리는 온전히 남아있었다.

주말에 날씨가 포근하여 농사 일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모두들 서둘러 밭으로 나가 다가올 봄 농사 준비에 바빴다. 남은 감나무 가지치기를 이어갔다. 작업 속도가 늦어 쉬지 않고 일주일은 더해야 할 것 같다. 농사일은 끝이 없어 가지치기가 끝나면 퇴비 넣는 일이 기다린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했으니 이런 일 들도 봄 햇살이 도타와지면 마무리 짓게 될 것이다.

/정찬효 시민기자

달집태우기
초보농사꾼의 마을에서도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 행사가 펼쳐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