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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5)<46>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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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6: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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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85)
<46>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8) 
 
김열규 교수가 개천예술제 백일장 개회식에 참석했는데 그가 귀향한지 1,2년 정도 되었을 때다. 우리나라 축제에서의 백일장들이 뜬금없는 것이라 여기고 있을 때였다. “왜 이런 자리에 내가 서 있는지를 모르겠어!”하는 독백 같은 소리를 필자는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유가 축제와 단위행사가 별개로 노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한 것이었다. 필자는 김교수가 적시에 귀향한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 축제 세미나를 연다면 일번으로 김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교수는 귀향한 이후에 여러 가지 지역문학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했는데 물론 그 첫 번째는 주제 강연이었고, 그 다음에는 지역의 작가들의 작품에 해설을 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에도 원고료를 가지고 따지지 않았다. 필자가 관여하는 행사에 강연을 하고 난 뒤에도 강사료를 옵션으로 걸거나 후일담으로 얼마를 받았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국학의 1세대 학자였던 양주동 선생은 원고료나 강연료나 방송 출연료를 사전에 얼마 이상이라 해놓고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번은 방송에 양주동, 서정주, 조연현 세 분 교수가 한 프로에 출연을 한 일이 있었다. 방송국에서는 출연료를 대표 교수인 양주동 교수에게 건넸는데, 양박사가 꺼내 보니 10만원이었다. 그래 양박사는 두 후배 교수에게 “나는 출연시간 동안 말을 제일 많이 했기 때문에 4만원을 가지고 두 후배 교수는 각각 3만원씩 나누는 것이 이치에 맞아요.”하고 혼자 의견으로 불균형 배분을 하자 서정주 시인은 언제나 원만주의자이므로 “그렇게 하시지요.”한 데 반해 조연현 평론가는 “양의 측정도 무슨 잣대로 하느냐가 문제이고 설사 양이 적더라도 가치면에서 더 수월성이 있는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양박사님의 배분 방식은 옳지 않아요.”라 따졌다. 위기로 갈 번했지만 서정주 시인의 중재로 양박사안을 원안으로 하고 그 원안이 다수결 통과가 되었다.

김열규 교수는 필자의 열한 번째 시집 ‘깊어가는 것은’(2006, 계간문예)을 낼 때 작품해설을 썼다. ‘시와 성(聖)의 일체가 노래하면....’이라는 제목을 걸었는데 ‘깐깐하고 질기고 야멸찬’, ‘포에지와 디다크디크’, ‘마침내 성과 속의 합일’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풀어주었다. 김교수가 바라본 것은 필자의 시가 ‘學詩 일체’라는 것이었다. 학문과 시가 하나로 만나는 시라는 말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가르침(교훈)과 시가 하나라는 시학 원론을 이야기하는 것인 셈이다. 필자는 필자와 다른 시인들과 구별점이 있다면 강단시인이란 점일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어 시를 썼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를 김교수는 파악한 것이었다. 필자는 해설 원고료를 얼마 드렸는지 기억이 없다. 결례는 하지 않았는지 지금에사 걱정이 된다. 필자도 해설류의 원고 청탁을 받을 때면 한 번씩은 ‘사전 책정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안개가 눈앞으로 지나갈 때가 있다. 대부분은 ‘내가 속물이구나’ 하고 고개를 젖는다. 그렇더라도 사후에 턱도없는 원고료를 원고료라고 내놓는 것을 보면 기분이 갈앉게 된다.

지역이나 서울지방이나 공공성을 띈 집필에 원고료 책정을 보면서 ‘아직 우리나라 경제가 이것밖에 안되니’ 라 자위하지만 관주도의 기획에서 문인 내지 선비 경시사상이 엿보일 때는 참으로 ‘한심하구나’ 개탄할 때도 있다. 김교수는 이를 뛰어넘었을까? 뛰어넘고 붕새처럼 높이 올라 멀리 보는 데 수련이 된 것일까?

그런 때 가슴에 낙타가 울컥하고 치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고독하고 고통스러움을 산책으로 책읽기로 치고 나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열규 교수는 대학시절 릴케를 많이 읽었다. 그때 그는 문학이라면 릴케 말고는 아무 것도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떤 평론가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말고는 거의 소설이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과 같다. 김열규의 여름방학은 으레 동래 범어사에 달린 깊은 산속의 작은 암자에서 보냈다. 입산할 때면 책이라곤 달랑 릴케의 것과 독일어 사전만 들고 갔다. 같은 강의를 듣다가 사귀게 된 친구에게 쓰는 편지에도 릴케의 사연이 가득했다.산사에서 머무는 동안 땀을 대가로 릴케에게서 얻어낸 것은 세 가지였다. 고독, 고통 그리고 죽음! 이런 것들에 싸이면서 성장하면서 그는 초월적인 자세를 다져낸 것일까? 그는 릴케에게 폐품 수집가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남이 다 버린 고독, 고통, 죽음을 보수 수선하여 재활용 하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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