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살리는 공공건축
지역을 살리는 공공건축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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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1980년대에 프랑스는 대대적인 공공건축물 조성에 나섰다. 건축물이 최고의 문화유산이라는 인식 아래, 당시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미테랑의 선두 지휘 아래 문화대국의 꿈을 키워 갔다. 이러한 이유에서 루브르 입구의 유리 피라미드,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노르망디 대교, 그의 이름을 딴 초현대식 국립도서관 그리고 박물관 등의 수많은 공공건축물을 조성했다. 이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파리는 과거의 전통 위에 새로운 미래를 옷 입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영국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대처 수상은 ‘디자인 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임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대대적인 공공건축 사업을 수행했다. 아시아 국가인 일본도 구마모토 현의 아트폴리스 사업을 통해 건축문화가 곧 21세기 도시와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1980년대 오염과 산업의 쇠퇴로 사양길을 걷던 이 지역은 공공 건축사업으로 기적 같은 회생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지방과 지역의 특징을 중요시하게 된 일차적 배경으로는 소위 ‘국제주의 건축’에 대한 반발을 꼽을 수 있다. 이는 1920년대에 ‘르 꼬르뷔제’라는 위대한 건축가를 중심으로 등장한 사조로 근대 및 현대사회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같은 형태의 건축과 도시를 전 세계에 예외 없이 적용시켰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장식이 배제되었고, 도시의 모습은 사각의 성냥갑 건축물로 변모해 갔다. 도시 중심부는 지역환경과 유산은 도외시한 채 업무와 상업을 위한 자동차 중심의 기능도시로 만들어졌다. 이는 인간 척도를 무시한 처사였고, 그 결과로 도시공간에서 시민 축출과 인간소외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성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통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는 역사적 유산 및 지역 정체성의 존중과 계승, 그리고 사람 중심의 도시건축에 초점을 두었다. 이에 반해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는 개발과 고도성장 시기를 겪고 있었고, 건축과 도시는 국제주의의 비인간화 및 비특징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안아가고 있었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글로벌화와 더불어 지방화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다시 국제화에만 관심이 쏠리게 되었고, 지역특성화는 물밑으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조성되고 있는 행정수도, 혁신도시, 그리고 각종 신도시 사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원래 지방화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들 사업들이 지방의 특징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뉴욕이나 서울의 정취를 그대로 심어 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진주 혁신도시만 해도 이전보다는 수려한 공공 건축물이 지어지는 것이 사실이나 이것이 우리 고장의 문화를 계승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점은 혁신도시뿐만 아니라 곧 완공되는 법원 등의 각종 공공 건축물에서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이 지역의 정체성을 담으려면 3가지 요소 중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선 경제, 산업, 정치, 행정, 문화, 역사, 관광 등의 인문·사회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기술, 과학, 산업 등의 요소가 강조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태 및 지리학적 요소인 지역의 미기후, 자원, 지형, 토양 등이 건축을 통해 형상화되고 구체화되어야 한다.

말로는 지방 균형발전이니 지역 특성화 등을 표명하면서 실제로는 작은 서울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우려스럽다. 선진사례에서도 보듯이 지방은 그 스스로의 전통, 역사, 기술, 환경을 살린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야 21세기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다. 공공건축은 그 공공적 인지성과 의미 때문에 이러한 것을 필수적으로 담고 있어야 한다. 때늦은 후회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를 시행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

최만진 (경상대 EU연구소장·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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