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문화, 경남의 자랑> 진주 청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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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희성
  • 승인 201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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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청룡 내려앉은 창건 설화 품은 천년 고찰

청곡사_청곡사전경
청곡사 전경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월아산 자락에 위치한 청곡사는 1000년을 넘긴 고찰이다. 해인사나 통도사 처럼 규모는 그리 웅장하지 않지만 천년고찰에 걸맞게 국보와 보물, 도문화재 등 많은 문화재와 전설·설화 등을 갖고 있다. 창건 이후 1380년(우왕 6)에 중수, 1397년(태조 6)에 중창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612년(광해군 1)에 새롭게 조성됐다. 조선 말기에 들어 대대적인 중수를 해 내려오다가 6·25 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수차례 걸쳐 중수와 보수 등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堂宇)로는 대웅전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국보인 영산회괘불탱을 비롯 보물인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과 도 유형문화재인 삼층석탑 등이 있다.

◇창건 설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진주를 지나갈 때, 푸른 학이 남강변에서 월아산으로 날아와 앉았다. 도선국사가 둘러보니 월아산에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하여 879년(헌강왕 5) 이곳에 청곡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절 입구에 있는 방학교(訪鶴橋)와 찾아온 학을 불러들인다는 뜻의 환학루(喚鶴樓)가 이 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다른 일설도 전해지고 있다. 금호지에 살던 청룡이 어느 날 밤 월아산에서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달을 여의주로 잘못 알고 달을 깨물기 위해 뛰어올랐다가 떨어졌는데, 그때 움푹 팬 자리에 절을 지었고, 그 절 이름을 청곡사라고 칭했다고 한다.

◇문화재 현황

▲청곡사 영산회괘불탱(국보 제302호)

1997년 9월 22일 국보로 지정된 길이 10.4m, 폭 6.4m의 불화이다.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괘불로,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위탁, 보관되고 있다. 1722년(경종 2) 화승인 의겸이 제작한 매우 섬세하고 채색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앙의 석가불인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연꽃가지를 들고 본존을 모시고 있다. 석가불의 두광(頭光) 좌우에는 백의관음(白衣觀音)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있고, 석가의 대표적 제자인 아난과 가섭 등도 보인다. 그리고 화불(化佛) 2구가 배치된 삼존불 형식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법의 등에 장식되어 있는 화려하면서 도식적인 꽃무늬 장식 등은 18세기의 한 주류를 보여 주는 특징적인 요소이다.



사본 -국보-청곡사영산회괘불탱
국보 제302호 청곡사영산회괘불탱


▲목조 제석천·대범천의상(보물 제1232호)

1995년 12월 4일 보물로 지정됐다. 청곡사 소유로 해인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목조 제석천·대범천상의 크기는 높이 210㎝, 머리높이 64㎝, 어깨너비 70㎝이다. 청곡사의 제석천·대범천상은 국내 유일의 조각상으로, 흰색 호분을 바른 자비로운 얼굴 모습과 봉황·화염패 등으로 장식한 보관(寶冠), 합장하지 않고 수인(手印)을 결한 손의 모습에서 입체감을 나타냈으며, 옷의 무늬도 불화에서의 제석천·대범천상과는 다른 양식을 취하고 있어 불교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조각의 기법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랐는데 18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보물 제1688호)

2012년 12월 21일 보물로 지정됐다. 대웅전에 봉안돼 있는 목조로 만들어진 좌상이다. 석가모니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문수보살좌상, 우측에는 보현보살좌상이 있는 삼존불좌상으로, 제작 당시에 기록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제작자 등의 불상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건륭 15년(1750)에 기록된 ‘불사동참결연작복록’에서 “만력사십삼년을묘불상조성(萬曆四十三年乙卯佛像造成)…” 이라는 불상의 제작연대가 적혀있어 1615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층석탑(도 유형문화재 제5호)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중기단 위에 탑신부를 구성한 높이 2.5m의 일반형 삼층석탑이다. 기단부나 탑신부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는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 1매석(一枚石)으로 조성되었고, 노반석(露盤石)과 상륜부재(相輪部材)들도 별석(別石)으로 이루어졌다.

석탑은 대웅전 앞에 있지 않고 그 좌측 약 30m 지점에 별도로 있어 비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 이 석탑이 879년(헌강왕 5) 승려 도선(道詵)이 청곡사를 창건할 당시 건립한 탑인지는 의문이지만, 현재 청곡사에 남아 있는 유물 중에서는 가장 시대가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도 유형문화재 제51호)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주심포 팔작집으로 활주를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 목조 기와집이다. 광해군 때 그 원형이 이루어졌으며 서부 경남 일대에서는 가장 오래 된 건물에 속한다. 일반인이 출입하는 대웅전 측면의 두 쪽 문에 쪽문 하나가 더 달려 있는 것이 이채롭다. 대웅전내에는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영산회상도, 괘불함 등이 있다.



051호-청곡사 대웅전_청곡사대웅전
청곡사 대웅전


▲괘불함(도 유형문화재 제261호)

청곡사 괘불을 보관하기 위하여 1722년 괘불과 함께 조성됐다. 1988년 12월 2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특히 괘불함에 장식된 경첩, 용머리 모양의 손잡이, 연못에서 연꽃을 따는 동자들을 조각한 앞바탕 장식은 공예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잠시 통도사의 성보박물관에 위탁보관하였으나 2008년 5월 12일 청곡사 내 불교문화박물관이 완성되어 현재는 청곡사에서 보관하고 있다. 괘불함은 두꺼운 목판을 이용해 튼튼하게 제작하였는데, 각 모서리마다 금속장식을 붙이고 옮기기 쉽도록 직사각형의 몸체에 맞는 철제고리를 달아 두었다.

▲금강역사상(도 유형문화재 제348호)

2000년 1월 31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금강역사는 사찰의 문 좌우에 서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을 가리킨다. 금강역사상은 업경전 안에 있는데, 중생이 생전에 쌓은 업(業)을 심판하는 명부시왕(冥府十王)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2구(軀)의 금강역사상은 크기가 약간 다른데, 왼쪽은 총 높이 210㎝, 어깨 너비 80㎝, 대좌 너비 92㎝이고, 오른쪽은 총 높이 220㎝, 어깨 너비 75㎝, 대좌 너비 85㎝이다. 대형 통나무에 이음새 없이 조각하여 신체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이 조각품들은 조선시대 고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서 조선 후기의 목조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영산회상도(도 유형문화재 제349호)

2000년 1월 3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대웅전에 있는 세로 410㎝, 가로 273㎝ 크기의 불화.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4대 보살과 10대 제자, 분신불, 사천왕, 팔부신중, 제석, 범천, 용왕, 용녀, 청문중(聽聞衆) 등으로 구성된 군도식 배치구도이다. 비단 바탕에 화려하게 채색된 이 그림은 1750년(영조 26) 제작된 것으로 내용이나 규모면에서 보기 드문 불화이다. 화원 명열(明悅) 비구가 주상삼전하의 만세를 위해 발원 제작했으며, 이 공덕으로 인해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업경전(도 문화재자료 제139호)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됐다. 이 건물은 청곡사를 창건할 때 대웅전 옆에 건립한 것이다. 업경전은 보통 명부전(冥府殿) 또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부른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본존으로 하며 중생들이 생전에 쌓은 업을 사후에 심판하는 10명의 왕인 명부왕(冥府王)을 모신 전각(殿閣)이다. 업경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비롯하여 염라대왕 등 10대왕이 조각되어 있는데 다른 절의 무섭고 엄숙한 모양과 달리 해학적인 모습에 친근함을 느낄 수 있다.

▲청동은입사청곡사명향완

청곡사는 태조 이성계의 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원찰(願刹)이다. 1396년에 신덕왕후가 승하하자 그 이듬해(1397년)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향완이다. 이 향완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이 향완에 새겨진 설명문에 따르면,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왕비인 신덕왕후가 승하하자, 1397년(태조6년)에 왕후의 고향인 진양대도호부(현 진주시)에 있는 월아산청곡사 보광전에 보존할 향완을 만들었다”라고 되어있다. 청동 바탕 위에 무늬대로 홈을 판 후 은선을 끼워 넣어 장식하는 입사기법으로 제작되었다. 몸체 전체에 범자(梵字), 연꽃넝쿨 무늬 등이 유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향완은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청곡사와 이성계, 그리고 신덕왕후

청곡사가 자리한 곳의 이름이 갈전리로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만나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말 이성계는 남해안의 왜구를 토벌하고는 무학대사와 함께 월아산 청곡사를 찾는다. 절에 오르기 전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자신도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우물가에 한 여인이 있어 물을 청하였더니 바가지에 버드나무 가지 하나를 띄워 물을 담아 주었다고 한다. 이유가 궁금해 물으니 여인은 급히 먹다 체할 것이 걱정된다 하였고 그 마음씨와 미모에 반한 이성계가 훗날 왕비로 삼은 사람이 바로 이때 만난 신덕왕후라고 한다.

정희성기자

/사진 제공=진주시



청곡사
월아산 금호지
제7경월아산 해돋이
월아산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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