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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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2. 산적 소굴에서
상돌이 큰소리로 웃고 나서 말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왕 죽을 목숨, 거짓말을 해서 뭣하겠습니까? 어서 그렇게 해주십시오. 모진 목숨 스스로 끊지를 못해서 힘들었는데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러자 매서운 눈빛으로 상돌을 한참 노려보고 있던 산적 두목이 호위하듯 자기 주변에 둘러서 있는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칼을 가져오너라. 그러잖아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잘됐다. 흐흐흐.”

그 웃음소리에 조운은 더욱 사지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런데 실로 이상한 노릇이었다. 그 웃음소리에 겹쳐 나오는 소리를 조운은 들었다. 히히히. 바로 광녀의 웃음소리였다. 내가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상돌은 조금도 동요하거나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심상한 어투로 조운에게 말했다.

“형님과 벗이 되어 저승으로 가게 된 것이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우리 저승에 가서라도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구를 반드시 만들어봅시다.”

상돌은 하늘이 놀놀해 보이는 조운더러 이런 말도 했다.

“죽은 혼이라도 조선을 건질 그 귀인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운은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숨을 몰아쉬며,

“그, 그래, 아우…….”

부하들이 곧 두목의 칼을 대령했다. 다른 산적들이 가지고 있는 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칼이었다. 그 길이가 보통 어른 키보다도 더 긴 듯하고 무게도 웬간한 장정은 들지도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의자에 앉은 채로 그런 칼을 작은 솜방망이 휘두르듯 하며 산적 두목이 살기 뚝뚝 묻어나는 소리로 말했다.

“자, 각오들 하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은 없느냐?”

이번에도 조운은 입을 열지 못하고 상돌이 천천히 말했다.

“남기고 싶은 말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산적 두목이 칼을 ‘솩솩’ 소리 나게 휘두르며 물었다.

“그게 무어냐?”

상돌이 산적 두목의 칼날보다 매서운 빛이 뿜어져 나오는 눈으로,

“다음 세상에서도 백정으로 태어나서 우리를 못살게 구는 양반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싶을 뿐입니다. 자, 이제 목을 베십시오.”

“무어라? 양반놈들을 어떻게 하겠다고? 으하하핫!”

산적 두목의 웃음소리가 그곳 산채를 왕왕 울렸다. 조운의 귀에 또 광녀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그러자 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면서 될 대로 되라는 오기 비슷한 감정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광녀로 인해 이런 편한 마음이 되다니.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 걸려 찢겨진 채 북풍에 시달리는 연처럼 세차게 흔들리던 조운은 사라졌다.

그 뜻밖의 놀라운 소리가 나온 것은, 산적 두목의 웃음소리, 아니 광녀의 웃음소리까지 주변 산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가뭇없이 흩어진 후였다.

“그 허풍이 내 마음에 든다. 나도 원래는 백정이었느니라.”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조금 전 상돌이 우리는 백정이라고 했을 때 그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진 이유를 알았다. 산적 두목이 상돌에게 말했다.

“네가 진짜 백정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너희들 목숨을 살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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