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후스트레스장애 - ‘살아남은 자의 고통’
외상후스트레스장애 - ‘살아남은 자의 고통’
  • 경남일보
  • 승인 2014.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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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욱 (정신과의사·경상의대 명예교수·마산동서병원 부원장)
얼마 전 우리는 끔찍한 사고소식을 연이어 두 번이나 접했다. 하나는 지난 2월 16일 하느님의 흔적을 찾아 이집트로 성지순례를 떠났던 신자 일행이 시나이 산 근처에서 버스 폭탄테러를 당해 5명이 숨진 일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날인 2월 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붕괴되는 바람에 대학 입학을 앞둔 19세의 꽃다운 청춘들이 일거에 인생을 마감한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런데 다행히 생명을 건진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악몽을 꾸고 잠을 못자며 깜짝깜짝 놀라고 죄책감과 대인 기피증에 시달리는 소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언론은 전한다.

천재(天災)는 적은 대신 각종 크고 작은 인재(人災)가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턴가 PTSD, 즉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라는 말이 친숙한 용어가 되어 버렸다. PTSD는 생명에 위협이 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을 겪은 후에 다양한 정신증상을 보이는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특히 회상이나 꿈을 통한 과거 사건의 재경험, 유사한 상황에 대한 지속적 회피와 정서적 마비, 지나친 각성 상태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가벼운 PTSD는 대개 단기간의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로 빨리 호전된다. 이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게 도와주고 지지와 격려를 보내며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PTSD 치료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강한 식생활, 좋은 수면, 금연과 절주, 규칙적 운동, 따뜻한 인간관계 등 인간생활에 기본이 되는 것들을 가급적 빨리 회복시켜 주는 일이다. 아울러 나약해진 마음을 다시 추스를 수 있도록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한편 개인이나 사회가 겪는 모든 재난을 하늘의 뜻, 운명이나 운수 소관 또는 불가항력적인 힘의 탓으로 돌려 아예 극복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거나 무조건 순응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현상은 대개 회피, 합리화, 투사(投射) 같은 일종의 심리적 방어에 의한 것으로 일시적인 불안 억제효과가 있긴 하지만 결국에는 재난에 대하여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 더 나아가 그런 고통과 대면하고 극복함으로써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게 한다. 따라서 재난 중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은 괴롭더라도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온 몸으로 마주하면서 재난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이것이 불러온 내면의 갈등과 극복방안을 찬찬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누가 아는가. 전화위복(轉禍爲福)으로 더 참되고 의미 있고 행복한 새 삶을 살게 될지.


손진욱 (정신과의사·경상의대 명예교수·마산동서병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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