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가 너무 많은 세상
들러리가 너무 많은 세상
  • 경남일보
  • 승인 2014.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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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심판 판정이 많은 논란이 불러일으켰다. 공정하지 못한 심판으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생각하여 경기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이 울분을 토하였다. 그동안 국제적인 스포츠대회의 심판 불공정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언론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거국적으로 울분을 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선수가 러시아의 스포츠 국가주의의 희생이 된 것에 대한 소박한 대응인 셈이다. 그런데 불공정함에 대한 불만이 국제 스포츠대회 시즌 유명 선수에게만 적용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의식이 평소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을까?

그들이 피나는 훈련과 극기를 통해 기량을 보여주니 같이 기뻐하고 흥분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올림픽은 끝났지만 인터넷에서는 심사의 공정성에 의혹을 품은 네티즌들에 의해 재심사 촉구 서명운동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이 서명운동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인들과 캐나다인의 서명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과도한 민족주의로 인한 오기만은 아니라는 점과 전 세계인들이 이번 사건에 의혹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러시아의 스포츠 국가주의에 의해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면 결과적으로 지난 수년간 피나게 노력한 많은 선수들이 러시아의 들러리로 전락한 셈이다.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뿐만이 아니다. 중요한 스포츠대회가 있을 때마다 주최국의 텃세가 논란이 되어 왔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 지도자들이 스포츠 정신을 바탕으로 한 건전한 교류보다는 스포츠를 국가 이미지 제고와 국력 과시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한 결과이다. 스포츠 정신의 본질은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공정하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마음으로 결과를 인정하기가 힘들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선수들은 한 명을 위해 장단을 맞춘 꼴이 된다. 들러리라는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과정이 공정했을 때 최선을 다한 참가자들은 결과에 관계없이 참여의 희열을 맛볼 것이다. 이것은 비단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서 주변의 다수를 함께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색용으로 이용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시킬 때 그 다수는 들러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는 너무 들러리가 많다. 들러리는 공정한 경쟁의 참여자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다른 종목을 선택할 기회를 주든지 아니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들러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뜻이다. 한 명의 영웅을 위해 그 불공정함에 흥분하고 있지만 힘없는 다수의 불공정으로 인한 억울함에 대해 그렇게 흥분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주인공이 만들어질 때 우리는 모두 그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열패감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많은 성공 신화가 있었고, 그 성공신화 이면에는 피나게 노력한 주인공이 있다. 스티브 잡스형 인재로 소비자를 사로잡은 스마트폰을 개발하여 지방대 출신으로는 드물게 굴지의 대기업 임원이 되기도 하고,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신기술을 개발하여 성공적인 기업을 일군 경우도 많다. 어떤 반칙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하여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경우 우리는 자신의 성공 여부를 떠나 흔쾌히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나게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이 공정했을 때는 그 소수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아낌없는 박수가 울려 퍼지는 사회를 위해 스포츠 스타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공정함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하재청 (시인, 진주제일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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