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의 디카시로 여는 아침>
빨래집게가 남은 햇살 집어 말리고 있다.
잘 마른 빨래냄새가 좋다, 비누냄새가 좋다.
다냥한* 날에 잘 마른 봄날 하루를
차곡차곡 개켜 어머니 곁에 놓아두고 싶다. -신진호 <햇살 빨래>
* 다냥하다 (=당양하다) : 햇볕이 잘 들어 밝고 따듯하다.
빨랫줄에 걸린 저 햇살 한 줌에 잘 마른 빨래냄새가 풀내처럼 빳빳하다. 그 풀내를 따라 거슬러 오르는 어느 해 겨울 끝자락에선, 저런 햇살 아래 싸르락싸르락 손금을 털며 밀짚을 땋으시던 어머니가 계셨고, 또 어느 해 봄날의 햇살 아래선 하얗게 세라복 칼라를 손으로 비벼 빨던 사춘기 누이의 불그스레한 설렘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이른 아침 나뭇짐 한 짐 지고 내리신 아버지, 그 지게 위로 장대를 밀어 올려 빨랫줄을 넘겨주던, 아직은 손이 덜 여물었던 내 어린 날 한때도. 오그종종 매달린 빨래집게들을 보며 가난한 일상을 옹골지게 버텨내던 시골집 일가들의 모습들을 생각해 보기도 하는 봄날이다. /차민기·창신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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