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빈자리
  • 경남일보
  • 승인 2014.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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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경남복지정책연구원 이사)
내 친구는 소도시 도로변에 작고 아담한 꽃집을 운영하며 산다. 화원 안 오디오에서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이 꽃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차탁에 놓인 찻잔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는 차를 앞에 두고, 우아하게 앉아 독서를 하는 꽃집 주인에 대한 내 환상을 뭉개버린 친구다. 학교 다닐 때 입어본 교복 말고는 치마라곤 가까이 해 본적조차 없어 보이는 그 친구는 성격도 완벽한 터프가이다. 시원시원한 말투에 자칫 감성을 베이지나 않을까 위축되게 하는 그녀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가끔은 부럽기도 하고 그 앞에 서면 쭈뼛거려지기도 하는 친구다. 그래도 경우는 발라 뒤끝이 개운하고, 마주앉아 있으면 유쾌하고 재담 넘치는 넉살에 시간을 뺏기게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항상 밝고 발랄하고 씩씩한 친구의 그 웃음도 아픔과 고통의 깊고 깊은 삭힘이 바탕이라는 걸 아는 사람 별로 없다. 친구는 남편이 없다. 많은 시간 병석에서 고생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몇 년 병 수발 받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곧 이어 남편이 자리보전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남편마저 가버린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생사인데도 남이 부끄러워 외출을 못하고 집안에만 있다가 친구는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자구지책으로 꽃집 운영을 하게 되었다. 꽃집을 운영하면서 친구는 숱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는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도, 또한 자신이 그래도 나은 형편에 있다는 것도 보았다. 어느 날 친구는 의식하지 못한 채 그동안 부둥켜안고 살아왔던 무거운 짐들을 많이 덜어낸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감정이입되어 함께 슬퍼하고 즐거워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삶을 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칙칙하고 어두웠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어느 사이 밝고 활발한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는데, 그녀의 털털한 무애행에 이끌려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그 안에서 웃음이 피고 밝음이 자리했던 것이다.

친구는 거침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도 아픔의 깊은 속성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정말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그녀의 여린 본성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며 그 속에서 웃음을 길어 올리는 모습은 보는 이를 정화시키기도 한다.

오늘도 화분 정리를 마치고 뽀얀 먼지 속에서 손을 탈탈 털며 구부정하게 일어서는 친구의 모습에서, 남편이 가고 남은 빈자리가 턱없이 크다고 하던 그 자리에, 올망졸망 가득 핀 꽃들이 웃고 있는 것을 본다.

이서윤 (경남복지정책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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