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기둥과 억새능선 공존의 조화
바위기둥과 억새능선 공존의 조화
  • 최창민
  • 승인 2014.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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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선정 100대명산 <94>천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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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봉

기이한 돌과 바위기둥의 향연, 억새와 육산의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산. 천관산은 하나의 산에 두가지 볼거리가 있는 산이다.

금강굴 기점 환희대 오름길은 석림의 골짜기로 바위의 드센 기운처럼 남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환희대에서 연대봉의 유장(悠長)한 능선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억새의 산으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이를테면 천관산은 바위의 숲과 억새의 숲이 절묘하게 어울려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지제영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직역하면 ‘지탱하고 끈다’는 의미지만 ‘지제지’에 의하면 지제는 탑의 이름으로 ‘이 산의 형상이 탑과 같이 생겨 세존의 복덕이 쌓여 있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돌 모양이 기이하고 훌륭하며, 항상 산 위에 붉은 구름과 흰 구름이 떠 있다’라고 묘사했다.

일부에서 천관산을 통일신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의 여자 ‘천관녀 사연’과 혼동하는 이가 있는 모양이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애틋한 사랑과 배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참마사건을 다룬 기구한 사연은 천관산과는 무관하다.

유신의 여자 천관녀는 천관(天官)의 딸일 뿐이며 이곳 천관산(天冠)의 의미는 ‘천자의 면류관’이다. 유신이 천관녀를 위해 세웠다는 천관사는 경주시 교동 천원마을에 있으며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천관(天官)이 경주를 떠나 멀리 장흥까지 올 리 만무하다. 이산 들머리에 있는 천관(天冠)사 때문에 빚어진 일인 듯하다.

▲천관산은 전남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다.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높이 723m. 1998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꼽힌다.

환희대 기점 8부 능선에서 정상까지 수십 개의 암봉이 마치 죽순처럼 하늘로 치솟아 있다. 정상의 능선에는 억새가 바다를 이루고, 남쪽에는 다도해의 풍광이 펼쳐진다. 산 아래 천관사에 오층·삼층석탑 등 문화재가 있다.

▲산행은 천관산도립공원주차장→호남제일 지제영산이정입석→만남의 광장 첫번째 갈림길→영월정→두번째 갈림길→도화교·태고송·장천재→체육공원 세번째 갈림길→오른쪽 통나무계단→능선→무덤→계곡 데크교량→선인봉앞 암반→금강굴→환희대→억새능선→천관산 연대봉→정원암→양근암→첫번째 갈림길 합류→공원주차장 원점회귀. 7.9km에 휴식시간 포함 5시간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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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 암반에서 본 풍경


▲오전 10시, 공원주차장을 출발한다. 천관의 옛 이름 ‘호남제일 지제영산’ 이정입석이 봄햇살에 반짝인다. 500m를 더 걸어가면 로타리클럽의 상징물 앞 만남의 광장에서 산행의 첫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양근암 정원석을 통해 정상 연대봉으로 바로 가는 코스, 오른쪽은 금강굴 환희대 코스다. 오른쪽 영월정 정자를 지나면 곧바로 또 갈림길, 왼쪽 역시 양근암 연대봉으로 바로 가는 길이며 오른쪽이 금강굴 환희대 길이다. 모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에서 왼쪽은 탤런트 이승기가 간길이고 오른쪽은 강호동과 이수근이 간 길이다.

계곡을 따라 3분정도 더 올라가면 대리석으로 만든 무지개형 복숭아꽃다리가 나오고 그 뒤에 태고송, 장천재가 잇따라 등장한다. 그런데 600년 수령의 명품 태고송이 말라 비틀어져 죽어 있다. 사시사철 초록이 성성했고 2년 전에 왔을 때도 살아 있었던 걸 확인했었는데 지난해 태풍으로 죽었다고 한다. 600성상의 끝을 이 세대에서 보고 말았다.

반계공 위정명(1589∼1640)선생이 8세 때 이 소나무의 위풍을 보고 지은 ‘태고송시’가 옆에 새겨져 있다.

/세황제의 은택으로 저절로 자라 순목의 품성으로 천년이 되었구나/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그곳에 올랐더니/태고송의 봄볕이 그중 으뜸일세/

장천재는 장흥위씨 중조창주 18대손인 승문습독공 위유정의 부인 의인 평산신씨의 묘각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위백규(1727~1798)가 강학했다.

장천재를 지나면 드넓은 체육공원에서 세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그 한켠에 바다 기운을 품고 자란 수백년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정면방향은 계곡을 타고 오르는 길이며 오른쪽 통나무계단길이 금강굴 환희대코스다.

산 초입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능선에 올라서 산 사면을 따라 비스듬하게 돌면 오른쪽 길 아래 무덤군이 나온다.

오전 10시 25분, 계곡의 실개천을 만난다. 마을의 상수도가 되는 계곡으로 철조망을 쳐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장천재에서 700m올라온 지점이다. 계곡을 건너면 본격적인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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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한 능선, 늠연한 암릉의 조화 천관산.


출발 후 한시간이 지날 때까지 별다른 풍경은 없다. 뒤편 들녘을 지나 동백숲을 헤치고 온 바닷바람이 싱그럽다.

오전 11시 10분, 이때부터 이 산의 명물 바위군이 첫선을 보인다. 바위 밑을 돌아 능선에 올라서면 바위숲이 무대의 막을 연다.

이제 바위 사이를 돌기도 하고 비집기도하면서 고도를 높인다. 시시때때 바뀌는 풍경을 놓치기 아쉬워 원근산을 보다가 정작 발을 헛딛는 수도 생긴다.

어느 순간 거친 숨소리 끝에 선인봉 앞 드넓은 암반 위에 닿는다. 이름도 화려한 구정봉 노승봉 천주봉이 육중한 몸매를 드러낸다. 설악의 옹골진 암봉, 가야 석화성에도 견줄만한 군웅할거 풍광이다.

오전 11시 54분, 금강굴. 종봉의 동쪽지변 명적암 아래에 있는 굴로 1∼2명이 들어갈 수 있다. 굴안에는 지금이라도 당장 마실수 있을 정도의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흐른다.

바위의 뿌리를 돌아가면 이 산에서 처음 만나는 나무계단이 나온다. 화려한 돌의 잔치는 계속된다. 배모양이라는 석선, 가장 높은 봉우리로 새도 쉽게 날아 오르지 못한다는 대세봉, 당과번을 겹쳐 만든 기를 뜻하는 당번, 하늘을 떠받치는 돌기둥 천주봉, 기암의 연봉들이 웅장하고 늠연(凜然)하다. 어떤 것은 손가락 하나 힘으로도 넘어뜨릴 수 있을 정도로 위태롭게 서 있다. 이 돌기둥들은 때로는 바람과 구름 산새들의 친구가 된다.

암봉들은 고도를 높일 때마다, 시선의 각에 따라 색다른 형상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자연이 빚어낸 기암의 전시장이다.

낮 12시 24분, 환희대에 닿는다. 20㎡넓이의 암반이다. 눈앞에 보이는 구룡봉은 바위 위에 아홉마리의 용이 머리를 맞대고 놀던 형상이라고 한다.

연대봉까지 유장한 억새 능선이 펼쳐진다. 자연은 신기하고 경이롭다. 돌멩이 하나 바위 하나 억새 한줌, 관목류 몇그루에도 자연스러움은 배어 있다. 어떤 유능한 조각가나 조경가의 작품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따르지 못한다. 어떤 연출가가 연출도 자연스러움을 따르지 못한다. 아무렇게 던져 놓아도 자연은 자연스럽다. 설사 부자연스러운 것도 그대로 자연스럽다. 그래서 자연은 경이로울 뿐이다.

억새와 바람의 능선 산길은 일장춘몽처럼 짧았다. 더 머무르지 못하는 아쉬움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 억새능선과 바위군이 시야에서 자꾸만 멀어져 갔다.

오후 2시 11분, 723m 최고봉 연대봉에 닿는다. 과거 일본의 침입과 노략질을 내륙으로 가장 먼저 알렸던 봉화대가 있다. 의종왕(1160년)때 처음 쌓았고 1986년 복원 개축했다. 내륙 정남진 억불산과 전라병영성지 수인산 봉화대로 연결하는 봉홧길 들머리였다. 멀리 보이는 3면이 다도해로 동쪽은 고흥 팔영산, 남쪽엔 완도의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가 그림처럼 바다에 떠 있다. 맑은 날 월출산 추월산, 더 아스라이 제주도 한라산도 보인단다.

하산 길에서 만난 정원암의 생김새가 생뚱맞다. 혹시 신이 구정봉 노승봉 천주봉 등을 만들기위해 주무르다 실패해 이쪽으로 휙∼던져버린 것은 아닐까. 말이 좋아 정원석이지 분퇴(糞堆)처럼 생겼다. 조금 더 내려오면 남성을 상징하는 양근암이 있는데 맞은편 산줄기 같은 높이에 여성을 상징하는 금수굴과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왼쪽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서 만남의 광장에서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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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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