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남강 절벽 바위글씨 인물 열전 <3>
진주 남강 절벽 바위글씨 인물 열전 <3>
  • 최창민
  • 승인 2014.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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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익·김세진·김응모·정기택·이범직·조중익 편
‘이은용·윤명근·황재돈·이지용’ 바위글씨를 건너 뛰어 오른쪽 절벽 바위에는 ‘백남익·김세진·김응모·정기택·이범직·조중익’ 이름이 새겨져 있다. 왼편에는 백남익과 김세진이, 오른편에는 김응모·정기택·이범직·조중익 이름이 나란히 보인다. 그리고 아주 작은 글씨로 김응모 왼쪽에는 이장희(李章喜) 이름이, 정기택과 이범직 사이에는 김봉수(金鳳洙) 이름이 각각 각인돼 있다. 이들 인물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기록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언제 남강 절벽 바위에 새겨졌는지도 알 수 없다.

◇백남익(白南益)

바위글씨 맨 왼편에 새겨져 있는 백남익은 경상우병사를 지낸 인물이다. 내금위장으로 있다가 1882년 10월 경상우병사에 제수돼 진주에 진주에 왔으며, 1884년 4월까지 재임했다. 재임시 선정을 베푼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경상우도 암행어사 이헌영이 1883년 7월 서계를 올려 백남익에게 포상을 시행할 것을 요청한 기록이 있는 점, 진주성 안에 불망비가 서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백남익은 진주에서 많은 치적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선전관·충주영장·황해수사·총융청 중군·동지의금부사·병조참판·한성부 판윤·대호군 등을 역임했다. 이름이 각인된 시기는 1884년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름 왼편에 ‘갑신절도(甲申絶度)’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이름을 갑신년(1884년)에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884년 4월이 경상우병사를 그만 둔 시기여서 바위글씨가 백남익이 경상우병사 재임시에 각인됐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부임한 이후에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김세진(金世鎭)

김세진은 1895년 6월부터 1897년 4월까지 진주관찰부 경무관보를 지냈다. 진주관찰부 경무관보 재직시에는 의병 진압에 앞장서고, 각종 비리를 저질러 투옥되었는가 하면, 일진회 회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친일 행위도 서슴치 않고 행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경상우병사, 관찰사 부사·군수 등 지역을 책임지는 수장이 아닌 일개 경무관보의 이름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황당하다. 그것도 존경의 대상이 아닌 백성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었던 인물이라는 것은 더욱 황당스럽다. 이러한 인물을 바위에 각인하게 인정했던 그 당시 상황이 안타깝다.

하강진 교수(동서대 영상매스컴학부 영상문학전공)의 논문에 따르면 김세진은 1896년 1월 진주관찰부 경무관보로 재직할 때 의병장 노응규 부대가 진주성을 공격하자 관찰사 조병필과 함께 대구로 도주했다가 다시 대구진위대 병력과 일본군을 이끌고 의령에 내려와 의병부대의 동진을 저지하려다 실패해 또다시 대구로 도주했던 인물이다. 또 1897년에는 공금횡령사건을 일으켜 그해 4월 투옥되기도 했다.

◇정기택(鄭騏澤)

한칸 건너 오른편 바위 두번째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정기택은 한규설의 후임으로 1886년 3월부터 1888년 2월까지 2년간 경상우병사를 지냈다. 특히 이름 끝에 작은 글씨로 ‘병술안월(丙戌按鉞)’이 각인돼 있다. 이는 바위글씨가 정기택이 경상우병사로 부임한 첫해인 1886년에 새겨졌다는 것으로 확인해 주고 있다.

정기택은 2년간의 재임기간동안 촉석루와 함옥헌을 중수하고, 성곽을 개축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선정을 크게 베풀어 그가 임기를 마치고 떠난지 한달 후에 지역민들은 그의 선정을 기리는 ‘兵馬節度使鄭公騏澤永世不忘碑(병마절도사정공기택영세불망비)’ 철제 선정비를 건립했다. 현재 선정비는 진주성내 비석군에 세워져 있다.

정기택은 경상우병사 부임 이전에는 1882년 경기도 수군절도사·남병사(南兵使:함경도 북청 소재 병마절도사)를, 1883년에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884년 어영중군에 제수됐고, 1886년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맡았다.

이어 1890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고 1897년 중추원 일등의관, 1898년 경무사를 지냈다. 다시 1902년 평리원 재판장, 1903년 육군참장, 육군법원장, 원수부 기록국장, 의정부 찬정 등을 역임하였다. 1904년에 다시 경무사를 지냈으며, 같은 해에 함경북도 관찰사를 지냈다.

◇김응모(金膺模)

정기택 이름 왼쪽에 조금 작은 글씨로 각인돼 있는 김응모는 1886년 1월부터 12월까지 진주목의 군무책임자인 진주영장을 지냈다. 바위에 이름을 새긴 시기는 1886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응모 이름 옆에 ‘동년무융(同年撫戎)’이라고 작은글씨로 각인돼 있는데, 이는 정기택의 부임한 해와 같다는 뜻이다.

◇이범직

정기택 이름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는 이범직은 1901년 10월부터 1902년 7월까지 합천군수를, 1905년 1월부터 1906년 11월까지 안의군수를 각각 지냈다. 이름이 새겨진 시기는 잘 알 수 없다. 이범직은 진주 남강 절벽에 바위글씨를 새긴데 이어 합천 함벽루 석벽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바위글씨를 남겨 놓고 있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충북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이춘영 부대와 합세, 여러 차례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이듬해 간도로 건너갔다 다시 의병을 모집할 계획으로 평북 강계로 나왔을 때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한 구한말 의병장 이범직(李範稷)과는 다른 인물이다.

◇조중익(趙重翊)

이범직 이름 오른쪽에 새겨져 있는 조중익은 1905년 1월부터 1907년 3월까지 합천군수를 맡았다가 제천군수로 발령났다. 조중익도 이범직과 마찬가지로 진주 남강 절벽에 바위글씨를 각인해 놓았는데다, 합천 함벽루 석벽에도 이름을 새겨 놓고 있어 그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자료 제공=하강진 동서대학교 영상매스컴학부 영상문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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