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총명록’과 일기교육
‘승총명록’과 일기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4.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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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준 (진주 동명고 교감)
18세기 경남 고성에 살았던 선비 구상덕(1725~1761)은 그의 나이 20세부터 작고 이틀 전까지 37년 간의 삶을 일기로 적었고 ‘승총명록(勝聰明錄)’이라 명명했다. 모두 5권인 ‘승총명록’은 저자의 일상적인 생활사가 주된 내용이지만 일기의 내용이 다른 일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우리나라 농업사와 민속사, 사회·경제사 등에 관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담고 있는 사서에 가까운 기록물로, ‘추웠다. 20동(銅)으로 거구어(巨口魚) 2마리를 샀다’(1725. 12. 10.)거나 ‘밤에 호랑이가 개를 쫓아 사립문까지 이르렀다’(1735. 1. 7.)는 일상사에서부터 선현들의 시나 정책안도 소개하는 등 18세기 전반의 농촌현실이나 선비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한나라 유향의 ‘일유기야(日有記也)’에서 시작된 일기는 처음엔 통치자의 정치적인 공식기록이었지만 송대 이후 개인의 기록으로 확산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기록문화가 융성했던 조선시대가 절정기였다. 왕명 출납의 공식적 기록인 ‘승정원일기’에서부터 종군기록인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기행기록인 박지원의 ‘열하일기’, 궁중문학의 일부가 된 ‘계축일기’를 위시하여 다양한 계층에서 많은 일기를 남겼다.

일기(日記)란 개인이 일상에서 체험한 것을 하루 단위로 기록하는 비공식적인 기록으로 사적인 내밀함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지만 기록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16세기를 살았던 계암 김령(1577∼1641)은 죽기 전까지 39년 간 꼬박꼬박 일기를 썼는데, 거기엔 인조반정과 정묘호란, 병자호란 같은 굵직한 사건과 정치적 소용돌이와 선비의 일상사, 고통 받는 백성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고, 1945년부터 1951년 4월 작고하기까지 해방 전후를 기록한 젊은 사학자 김성칠의 일기는 해방 공간의 서울 모습과 한국전쟁의 발발 과정과 북한점령 시기의 서울 생활, 남한의 서울 수복 등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한 사람의 고독한 기록은 훗날 역사나 문학이 되기도 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난중일기’나 ‘열하일기’, ‘계축일기’와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가 대표적이다. 괴테가 1786년부터 2년 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쓴 일기는 ‘이탈리아 기행’의 모태가 됐고, H.D. 소로가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쓴 일기는 대표작 ‘월든’을 낳았다.

유년시절, 방학과제였던 일기쓰기를 개학 전날 ‘몰아쓰기’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평소 매일 담임선생님께 검사받았던 정기적인 일기쓰기를 통해 맞춤법을 익혔고 글쓰기의 기본과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의 일기쓰기 교육은 ‘인권침해’라는 가당찮은 부정적인 면보다는 학생의 생활지도 등 다방면의 교육적 참고자료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학교에서 일기교육을 활성화하고 어른들도 일기를 쓰자. 또한 알 수 있는가? 장수시대인 지금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가 훗날 중요한 역사적 자료나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될지.
문형준 (진주 동명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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