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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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천재 존 피어몬트 모건

J. P. 모건

J. P. 모건(John Pierpont Morgan)은 1837년에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Hartford)에서 태어난 미국의 금융가이자 은행가이다. 그의 아버지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은 조지 피바디(George Peabody)가 미국의 주정부 채권을 런던 투자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런던에 세운 피바디 주식회사에서 동업자로 일했다. 아버지는 미국의 대륙 간 철도회사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유럽시장에서 조달하는 채권 중개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아버지는 피바디가 은퇴하자 회사를 넘겨받은 뒤 아들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저 재산만 물려준 게 아니라, 돈을 불릴 수 있는 역량도 키워줬다. 아버지 J. S. 모건은 유럽 금융자본과의 유대를 강조했었는데 그러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일찌감치 아들을 유럽으로 보냈다. J. P. 모건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스위스, 독일, 영국 등지를 돌며 불어와 독일어는 물론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다. 모건은 독일 괴팅겐 대학을 졸업했고, 프랑스와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모건이 처음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분야는 철도다. 모건은 철도 건설 자금을 대기 위해 유럽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했다. 철도 업체가 쓰러지면 인수와 동시에 새로운 경영진을 투입,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모건은 남북 전쟁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척할 수 있었다. 이를 밑천으로 1864년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은행까지 JP모건 상사에 합병시켰다. JP모건시대가 본격 개막한 것이다. 모건은 철도는 물론 카네기 강철회사를 합병해 유에스 스틸(US Steel)을 설립했는가 하면 GE(General Electric), 듀폰, A&T 등과 같은 대기업의 탄생 과정에서도 산파 역할을 맡았다. 카네기, 록펠러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 중에 그들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이 바로 J. P. 모건이었다. 카네기가 철강왕국을 건설하고 록펠러가 석유제국을 세웠다면 모건은 금융제국을 쌓아올렸다. 모건은 금융 이외에 철도, 철강, 통신, 영화 등 미국의 핵심 기간산업 부문에서도 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해온 실물경제의 막후실세였다. 19세기의 산업사회를 산업자본가들이 이끌어왔고, 20세기를 금융자본가들이 이끌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바로 J. P. 모건이 가장 앞장섰다고 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 23번지 그의 사무실 ‘더 코너(The Corner)’는 거대한 금융제국의 심장부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고 모건이 세상을 재창조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후에서 미국 백악관은 물론 영국 왕실까지 조정할 정도였다.

모건은 경쟁을 몹시 싫어해서 질서와 통제를 추구했는데, 그 방법은 인수와 합병(M&A)이었다. 인수와 합병을 통해 모건은 미국 내 자본의 40%를 주물렀다. ‘모건화(Morganization)’라는 단어는 그의 사업방식을 상징한다. 모건은 잇단 합병을 통해 독점을 유도하는 동시에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당연히 수익성은 껑충 뛰어오르고 투자 수익률도 높아진다. 미국은 모건의 도움으로 몇 차례의 금융위기를 극복했다. 1893년 경기 침체로 정부 재정이 거덜나고, 은행과 기업의 파산이 속출하자 모건은 구세주로 등장했다. 모건은 당시 미국 정부의 금 보유규모가 3800만 달러에 불과할 때, 미국정부에 6200만 달러 규모의 금(金)을 빌려줬다. 그런데 1907년 연초부터 9개월 동안 무려 8000여개의 기업이 1억1600만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쓰려졌다. 뉴욕증권거래소 이사장조차 “증시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뉴욕 증시가 붕괴 조짐을 보이게 되자 모건은 소방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모건은 뉴욕 소재 은행장들을 서둘러 소집했다. 모건은 “우리가 2억 달러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증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은행장들의 협조를 강요했다. 록펠러에게도 1000만 달러의 구제금융 자금을 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은행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모건은 1913년 3월31일 로마에서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6830만 달러 규모의 유산을 남겼다. 이 가운데 3000만 달러는 은행 지분이었다. 금융제국을 일궈 낸 모건은 록펠러, 카네기, 포드보다 훨씬 적은 유산을 남겼다. 모건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이름을 딴 금융회사 J. P. 모건은 현재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지배하고 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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