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정치·경제학’
‘빚의 정치·경제학’
  • 경남일보
  • 승인 2014.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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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에 발생한 외환위기는 대체로 98회, 그 중에 한 번이 우리나라 IMF 위기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부채 증가분을 앞서면, 즉 부채보다 수입이 더 크게 늘어나면 부실 수준이 줄어들어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낮아진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이렇게 되는 국가는 드물다. 그래서 외환위기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가 얼마 가지 않아 가계부채의 증가와 정부의 재정 적자 등 총부채 증가를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경제활동 주체인 가계, 정부, 기업의 모든 ‘위기는 빚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경제사적으로 영원한 진리기 때문이다. 과거 모든 경제의 금융위기는 직·간접적으로 빚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이 경제사적으로 사실로 증명되고 있듯이, 대영제국이 기축통화의 권력을 미국에게 넘겨준 근본적인 것도 결국은 빚 때문이다.



지자체, 악성부채 상환에 눈 돌려야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개한 ‘2012년 말 공공부문 부채 산출 결과’라는 자료에 의하면 2012년 말 기준 지방부채 47조7000억원, 산하 공기업 빚 52조4000억원을 더하면 지방부채는 100조원을 넘어선다. 특히 후자의 원인은 지자체들의 무리한 인프라 투자, 중복투자, 예산집행의 비효율성들로 인한 것이다. 지방세 수입만으로는 공무원들의 월급조차 줄 수 없는 지자체가 절반이 넘는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로 지자체 부채상환 노력은 어려운 일이고 흔하지 않다. 세입원의 영세성과 예산집행 경직성 측면에서 한번 집행된 분야의 예산 축소나 폐지는 그만큼 지역민의 불만과 원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지자체 부채상환은 단체장 소신과 연결되어 있다. 진주시 민선 5기 출범 당시 사실상 부채 1156억 원을 작년 말 현재 1063억 원의 부채를 상환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고 흔치 않는 일이다.

독일인들은 ‘빚은 죄악(sin)’이라고 할 정도로 빚을 지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동일시하는 근검·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독일이 EU 회원국들의 원성을 들어가면서 그리스 부채에 대한 추가지원에 난색을 표한 것은 그들의 생활철학과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국민이 열심히 땀 흘려 일할 때 게으르고 나태한 그리스인들이 분에 넘치는 복지와 과소비로 빚을 져 파산했는데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 왜 땀 흘려 근검절약해서 부지런히 일한 독일 국민이 그 빚을 갚아야 하는가였다. 빚의 정치·경제학은 이렇다. 빚은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에 필요하다. 기업은 생산시설 확대와 규모의 경제로 생산성 향상, 정부는 국방, 치안, 복지정책 등 공공의 안전과 이익, 개인의 경우 욕망의 관리소홀에서 비롯된다. 소비는 풍요를 약속하는 듯해도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다. 욕망은 채울 수 있다는 기대로 포장된 유혹이고, 빚에의 유혹은 달콤하다. 개인 빚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빚이 경제위기의 원인이 되는 과정은 간단하다.

위기의 가장 밑바닥엔 노력하지 않고 횡재하려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이 탐욕이 빚을 낳고, 빚은 신용팽창을 낳고, 신용팽창은 버블을 낳고, 버블은 경제위기를 잉태한다. 쉽게 벌고, 빨리 벌고, 쉽게 쓰고 싶은 욕망이 빚을 권하게 했고 이로써 금융의 기능이 왜곡되어 결국 파멸의 온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시적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빚을 보면 오늘날 권력과 금력의 연합체가 만들어 낸 경제의 공통점은 바로 ‘빚’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 세계가 빚더미에 신음 중인 것이다. 지자체, 나라 살림살이나 개인가정의 살림살이도 그 원리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빚 그 자체, 우리를 구속하는 것

때로는 우리가 빚이라는 잔인하고 슬픈 현실에서 세상을 영리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노명우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 권모술수와 이해타산이 얽힌 처세술이 아닌, 선한 의지로 충만한 소박한 방어의 삶을 사는 착한 삶이 아닌, 영리하고 지혜롭게 세상 이치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재현 (객원논설위원,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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