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올공금 팔자
<이준의 역학이야기> 올공금 팔자
  • 경남일보
  • 승인 2014.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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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팔자 시간문제’라는 속말이 있고, ‘언덕은 내려다보아도 사람은 내려다보지 말라’는 속담도 있다. 사람의 운명이란 지금의 겉보기와는 달리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떵떵거리며 고함치고 잘사는 갑부가 내일이면 빌어먹는 거렁뱅이 신세가 될지도 모르고, 오늘 허리춤에 쪽박 차고 얻어 먹는 신세가 내일에는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는 세력가로 변할지도 모른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에는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관계의 팔자도 있으니,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상들에 대하여 너무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마음 아프게 촐랑거릴 필요가 없다. 이처럼 사람팔자가 뒤바뀌는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올공금(兀孔金) 팔자라는 것이 있다.

옛날 전주(全州)의 어떤 상인이 생강을 큰 배에 가득 싣고 서해 바다를 거쳐 평양으로 팔러 갔다. 생강은 남쪽지방에서는 많이 생산되지만 관서지방에서는 나지 않는 것으로 평양에서는 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이었다. 평양에서의 생강 한 배는 비단 1000필이나 혹은 질 좋은 쌀 1000석에 해당하는 값비싼 것이었다.

이 상인이 평양에서 생강장사를 하는 중에 어떤 기생과 눈이 맞아 수년 동안 같이 살았다. 마침내 싣고 온 생강이 다 없어지자 기생은 “재물을 더 가지고 오든지 아니면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면서 상인을 매몰차게 내쫓으려 했다. 상인은 생강을 모두 탕진하여 빈털터리가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부끄럽고, 또 기생집에서 쫓겨나면 따로 머물 만한 곳도 없어서 기생에게 사정했다.

“내가 재물이 다 떨어졌고 갈 곳도 없으니, 네 집에 머슴으로 일하며 사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래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대신 집안일을 하면서 손님이 있을 때면 부엌에서 잠을 자야 해요.”

상인은 어쩔 수 없이 기생집 머슴이 되어 집안일, 농사일, 땔감 마련, 말먹이 주는 일 등 온갖 궂은일과 힘든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 갔다. 기생이 다른 남자와 안방에서 잠자리를 할 때면 상인은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통한의 나날들을 보냈다.

여러 해 동안 이런 수모(受侮)를 당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아무래도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기생에게 말했다.

“이제 집 떠난 지도 오래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야겠소. 그동안 많은 신세를 졌구려. 고맙소이다.”, “그래, 잘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래 함께 있은 정표로 무엇을 주지?”

기생은 노잣돈을 주기가 아까워 집안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장구를 꺼내 와서 장구에 걸려 있는 16개의 ‘올공금’을 풀어 주며 말했다. 올공금이란 장구 양쪽의 둥근 가죽판 테에 장구 줄을 연결하는 쇠고리를 말한다.

“이것이나 가지고 길을 가다가 쌀과 바꾸어 끼니나 때우시구려.”

상인은 그것을 받아 기생과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났다. 대동강가에 이르러 무료하게 배를 기다리는 동안 상인이 모래밭에 앉아 그 올공금 16개를 모래에 문질러 녹을 닦아 보았더니, 검정색이 반질반질 빛나면서 윤이 나고 보통 쇠와는 전혀 달랐다. 이를 황강(黃岡) 장터에 펼쳐 놓으니, 마침 이 물건의 가치를 아는 전주사람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 어디에서 났소? 참 희한한 일이네. 이것은 ‘오금(烏金;검정색의 금)’이라는 것인데, 보통 황금의 10배 정도 비싼 값으로 팔리는 보물로 매우 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100만 냥을 내고 사겠습니다. 돈은 전주로 함께 가서 드리겠습니다.” 함께 전주로 온 상인은 올공금을 팔아 그 돈으로 옛날의 생강 값을 갚고, 남은 돈으로도 ‘갑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또 열심히 노력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였다. 그가 검정 금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하여 ‘오금장자(烏金長者)’라 불렸고, 또한 사람의 운수는 알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올공금 팔자’라는 속담도 생기게 되었다.

광해군 때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1559∼1623)이 지은 한국 최초의 야담집인 어우야담(於于野譚)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예기치 않게 횡재(橫財)한다든지 로또 복권에 당첨된다든지 하는 현상은 일종의 편재기운의 발동이다. 일간이 극하는 오행을 재성(財星)이라 하는데, 양간과 음간이 연결되면 정재(正財), 양간과 양간, 음간과 음간이 연결되면 편재(偏財)이다. 서로 같은 극끼리 연결되니 밀어내고 부딪히는 기운이 발발한다. 즉 공중에 떠 있는 재물이다. 이를 갖기 위해 사람의 지혜와 덕성이 바탕이 되어야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하늘의 몫이다. 꿈만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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