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사연 간직한 금산사 품은 모악산
후백제 사연 간직한 금산사 품은 모악산
  • 최창민
  • 승인 2014.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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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일보 선정 100대 명산 <95> 모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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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같은 산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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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이 친아들 신검에게 잡혀 지하에서 감금돼 있다가 탈출한 금산사 미륵전. 복수심에 불타던 견훤은 왕건에 투항한 뒤 친아들 신검을 죽이는 자충수를 둔다. 뒷편 실루엣이 모악산정상이다.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노쇠해진 견훤은 후처의 아들인 넷째 금강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 평소 본처의 아들 신검 양검 용검이 전장에 나가 패전하는 등 못미더웠던 것도 이유였지만 상대적으로 금강이 총명하고 유능했던 것이 이유였다.

권력은 부자지간도 나눌 수 없는 법. 이런 사실을 눈치 챈 큰아들 신검이 형제와 모의해 정적으로 부상한 이복동생 금강을 제거해버린다. 이어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 미륵전 지하에 감금하고 신검 자신이 후백제 왕위에 오르게 된다.

비정한 권력의 속성 앞에 친아들에게까지 굴욕을 당한 견훤은 미륵전 지하에 감금된 채 3개월을 버틴다.

절치부심, 그는 분노로 가득 찬 노구에도 불구하고 상상할 수 없는 잔머리를 굴린다. 견훤은 이곳을 탈출해 과거 정적이었던 고려 왕건의 품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간다. 그리고 왕건을 도와 자신이 세운 후백제를 쳐 아들 신검 양검 용검을 모두 죽이는 자충수를 두고 만다.

이 사건은 결국 후백제가 나라를 세운지 짧은 2세대만에 멸망의 길로 접어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고 만다.

견훤이 지하에 감금된 채 분노의 치를 떨다가 결국 꼼수를 두게 된 곳이 금산사 미륵전이며 그 금산사를 품고 있는 산이 김제 완주 모악산이다.

▲모악산은 전북 김제시와 완주군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 793m. 전주시 남서쪽 11km지점에 있으며 과거 큰뫼로 불렸고 정상 아래 ‘쉰길바위’가 아이를 보듬고 있는 어머니 형상과 같아 모악산이라 부른다. 599년(백제 법왕 1) 창건된 명찰 금산사가 있다. 미륵전은 국보 62호다. 오층석탑(보물 25호), 금산사석종(보물 26호), 육층다층석탑(보물 27호), 금산사대장전(보물 827호) 등이 있다. 이외 주변에 귀신사 대원사가 있다. 한국전쟁 동학농민운동때 수목이 잘리거나 불에 타 큰 나무가 별로 없다.

신라 말 견훤이 이곳을 근거지로 후백제를 일으켰으며 조선 말에 많은 신흥종교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1971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등산로는 금산사 일주문→금산사→연리지(회귀)→모악정→KBS 송신소 케이블카탑→신선대→능선갈림길→정상(회귀)→능선갈림길→헬기장 심원암·매봉 갈림길→심원암북강삼층석탑→혜덕왕사진응탑비→금산사회귀. 10km, 휴식포함 5시간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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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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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석탑
▲오전 9시 30분, 금산사 일주문을 통과한다. 해탈교 금강문을 지나 미륵전 대적광전 육층다층석탑 오층석탑을 두루 둘러볼 수 있다.

워낙 오래된 대찰이고 각종 문화재가 많아 둘러보기에 숨 가쁘고 걸음이 빨라진다. 산행을 해야하는 부담 때문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국보 62호 미륵전은 766년 신라 혜공왕때 진표율사가 미륵장육상을 봉안하기위해 세운 법당이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5년 수문대사가 국내 유일의 삼층법당으로 재건했고 1993년 전면 해체보수 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 장대한 느낌을 주는데 외형은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을 닮았지만 층수가 3층인 것이 다른점이다. 1층 대자보전, 2층 용화지회, 3층 미륵전 편액이 걸려 있다. 외부는 3층이지만 내부는 통으로 뚫려 있다. 엄청나게 큰 삼존불상은 중앙에 12m높이의 금동미륵존불입상과 좌우에 9m높이의 법화림보살, 대묘상보살이 서 있다.

견훤이 아들에게 끌려가 3개월 동안 갇힌 채 절치부심, 권토중래를 도모한 곳이지만 ‘고심 끝에 악수’라고 결국 하늘 향해 누워서 침뱉는 꼴이 됐으니 사람이 만드는 역사는 정답 없는 아이러니다. 일국을 세운 왕도 그럴진대, 이를 지켜본 민초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권력욕 재물욕이 다 무슨 소용일까.

방등계단 사리탑과 오층석탑을 보고 금산사를 돌아 나와 왼쪽으로 돌아 물길과 함께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모악산 방향이다. 정상 4.8km 등 이정표가 잘돼 있으니 가고자 하는 코스와 목적지만 잘 선택하면 큰 무리 없이 산행을 할 수 있다. 취재팀은 연리지 방향으로 갔다가 되돌아와 모악정이 있는 코스로 직접 오르기로 했다. 연리지는 2006년 등산객에 의해 발견돼 이듬해 김제시에서 보호수로 지정·관리하면서 탐방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2012년 7월 태풍 카눈 8월 볼라벤, 덴빈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태풍이 나무가지를 부러뜨렸다. 지금은 속살까지 드러내면서 한쪽이 죽어가고 있는 상태다. 모악정을 지나 케이블카 탑이 있는 곳까지 임도가 나 있다.

오전 10시 30분, 출발 한시간만에 케이블카 탑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오른쪽 길은 장근재 길인데 통제돼 있다.

이때부터 산길이지만 통나무 계단이 많다. 정상 2.6km를 남겨둔 지점으로 경사가 커진다.

케이블카는 모악산 정상에 박혀 있는 KBS 전주방송총국 모악산송신소를 오가는데 이용하는 이동수단이다. 3∼4명이 정원으로 인근 군부대 장병들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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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계단


등산로를 기준해 공중 좌우로 케이블이 설치돼 있어 머리 위로 혹은 옆으로 케이블카가 둥둥 떠 지나간다. 그럴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KBS의 수신료 인상안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을 상기하면 케이블카는 사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8분, 신선대 표시가 돼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주변에 비럭이나 암반이 보이지 않아 딱히 어느 곳이 신선대인지 알수 없으나 약간 넓은 공터에 벤치의자가 몇개 놓여 있다. 정상 1.2km를 남겨 둔 지점이니 8부능선까지 올라 온 셈이다.

이때부터는 조금 더 급하게 고도를 높인다. 급한 경사 고스락 나무계단 옆에 대형무덤이 하나 나오고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산등성이를 돈다.

오전 11시 25분, 주능선 갈림길에 올라선다. 왼쪽은 매봉방향 오른쪽은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정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난 절경은 아니다. 거기에다 필요에 의해 세웠겠지만 모악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방송 통신시설이 정수리를 박고 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통신시설 옥상은 개방돼 있다. 사전 예약하면 방송시설 견학도 가능하다. 산을 차지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 듯 하다.

오전 11시 45분, 건물 옆에 정상 793m를 표시하는 이정표가 서 있다. 옥상에 4개의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전주시내를 비롯해 사방을 좀더 자세하게 조망할 수 있다. 드넓은 김제·만경평야가 펼쳐진다. 호남평야의 젖줄인 구이·금평 안덕저수지와 불선제 갈마제 등의 물이 모두 이 곳 모악산에서 흘러간다. 멀리 남으로 내장산, 서쪽에 변산반도가 보인다.

매봉방향으로 되돌아간다. 헬기장 공터의 매봉·심원암 갈림길에서 뒤돌아보는 모악산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철탑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립공원의 명성에 비해 산세가 덜하다는 의미다. 전주 완주의 진산으로 한자 ‘큰산 악’자가 붙은 산 치고는 용모가 수려하지 않다

취재팀은 매봉방향 산행을 포기하고 헬기장 공터 갈림길에서 심원암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이른 아침 출발해도 도내에서 먼 거리여서 시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산행지다.

심원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시민들이 많이 찾는 산으로 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공터가 있다. 어느덧 더워진 날씨, 휴식하면서 이마에 땀을 훔쳐 낸다.

오후 2시, 휴식 후 내려선 길에서 심원암 북강삼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산 중턱에 있는 삼층석탑은 의외로 규모가 크다.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보물 29호다. 북강은 북쪽 언덕을 뜻하며 1층 몸체는 통일신라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각 층 지붕과 2층 이상의 몸체는 고려탑의 성격을 띠고 있다. 안정감이 덜하고 조각기법도 거칠다.

오후 2시 17분, 인적이 없는 심원암 앞 계단을 내려서 노란 산수유가 핀 구렁 앞길을 따르면 늦겨울에도 짙푸른 편백나무숲이 하산 길 청량감을 안겨준다.

오후 2시 35분, 오른쪽 길옆 초록지붕의 보호시설이 씌워져 있는 문화재는 고려 숙종(1054∼1105년)의 법주였던 혜덕왕사의 탑비이다.

비문은 당대 명필이었던 정윤이 대사 죽은지 15년인, 1111년에 해서체로 새겼다. 잔돌이 박혀 있는 퇴적층 바위를 잘라 글을 새겼다.

금산사 일주문을 돌아 나올 때 고목나무사이를 폴∼폴 나는 새는 청딱따구리였다. 시계는 오후 3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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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바라본 모악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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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깊숙히 숨어 있는 심원암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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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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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 짙푸른 편백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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