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준비생의 빗나간 행각
공무원 준비생의 빗나간 행각
  • 강진성/정원경
  • 승인 2014.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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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학교 드나들며 물건 훔쳐
중고거래사이트에서 훔친 물건을 팔아 온 A(29)씨는 공무원 준비생이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최근까지 대학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에 매진했다. 하지만 지난 19일 200회에 걸친 절도행각이 경찰에 들통나면서 공무원이 되고자 했던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선처받은 지 1년 만에 또다시=A씨의 절도행각은 3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2011년 2월께 진주시의 한 대학교 강의실 사물함에서 책을 훔쳤다. 같은 과 학생의 물건이었다. 이에 앞서 2010년 노트북을 훔쳤다가 검찰의 선처로 기소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다. 1년 만에 또다시 나쁜 유혹에 빠졌다.

사물함을 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학과수업 시간표를 파악한 뒤 학생들이 다른 강의실로 수업을 간 사이를 노렸다. 사물함 대부분이 잠겨 있지 않는 점도 한몫했다.

훔친 물건은 다양했다. 전공서적에서 전자사전, 이동용 하드디스크, 스마트폰, 노트북, 카메라, 지갑 등 사물에 있는 모든 물품을 훔쳤다. 이렇게 시작된 A씨의 절도행각은 점점 대범해졌다. 다른 학과로 범행대상을 넓혀갔다. 심지어 다른 학교 2곳에 들렀다가도 나쁜 버릇이 나왔다. 죄의식도 점점 사라졌다. 그에게 절도는 일상생활이었다.

◆학교 사물함에 이어 자전거까지=평소 관심을 가졌던 자전거에도 손을 댔다. 자물쇠 없이 세워 둔 자전거가 타깃이었다. 곧장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자전거는 주로 학교 인근 아파트에 보관했다. 2층과 3층 계단사이에 세워 뒀다. 주민들은 서로 윗집·아랫집 자전거인 줄 알고 의심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파트 지하주차장과 인근 교회도 장물을 숨겨 두는 장소로 사용됐다.

훔친 물건은 사진과 함께 보관장소 등 관련 기록을 스마트폰에 남겼다. 중고장터에 올린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그 기록을 보고 자전거를 찾아왔다. 장물임을 피하기 위해 안장 등 훔친 자전거 부품을 서로 교환해 조립하기도 했다. 수백만원대의 자전거로 MTB동호회활동을 그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판매금 주식투자로 날려=훔친 물건은 헐값에 팔았다. 30만원 상당의 수의학과 전공도서는 7만~8만원에 팔아 넘겼다. 사범대, 인문대, 공대도서 등 가리지 않고 훔친 책을 팔았다. 장물흔적을 지우기 위해 책에 쓰여진 주인의 이름과 학번은 화이트로 지웠다. 자전거는 15만원선에 판매했다. 대게 신품가의 절반정도였다. 수백만원의 고가 자전거는 추적을 피하기위해 판매에 신중함을 보였다. 피해자가 도난사이트와 피해신고를 하자 집안에 보관해 두기도 했다.

그가 중고판매로 통장으로 들어온 돈은 6000여만원에 달한다. 직거래로 인한 현금거래까지 포함하면 1억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주식매입에 사용됐다. 펀드투자상담자 자격증을 딸 정도로 주식에 관심이 있었다. 나름대로 독학까지 하며 주식에 손댔다. 하지만 상당액 손해를 봤다. 현재 그의 주식계좌에는 130여만원이 전부다.

유흥비와 데이트 비용에도 사용됐다. 주말이면 렌터카를 타고 전국을 돌며 맛집기행을 하기도 했다. 여자친구에게 명품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받은 물건” 가족도 속여=A씨 집은 장물로 가득하다. 전공도서는 자신의 방뿐만 아니라 거실, 베란다에도 쌓아 두었다. 마치 서점을 연상시킬 정도다. A씨의 방은 그야말로 만물창고였다. 책상서랍에서는 훔친 지갑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타인 주민등록증과 학생증이 발견됐다. 서너대의 외장 하드디스크, 전자사전, 노트북, 스마트폰와 카메라도 나왔다. 축구를 하기위해 갔다가 훔친 축구화도 여러컬레였다. 가방도 본인 것이라며 완강히 부인했지만 피해자가 나타나자 자백하기도 했다.

가족 의심을 피하기 위해 “주웠다”, “친구에게 받았다”고 둘러댔다. 평범한 아들이었던 A씨가 3년간 200여차례나 절도했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여자친구도 돈씀씀이가 크긴 했지만 그가 상습절도범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장물기록 스스로 덫 만들어=A씨는 경찰에 긴급체포될 당시만 해도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의 추궁이 계속되자 중고사이트에 올린 물건 9개만 훔친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경찰이 그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분석하자 훔친 물건 기록이 줄줄 나왔다. 판매관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기록이 자신의 발목을 잡는 순간이었다. 저장된 기록에는 사진과 함께 훔친 장소, 일시, 보관장소 등이 담겨 있었다. 자그마치 스마트폰에 9342개, 노트북 1393개나 담겨 있었다. 판매를 위해 주고받은 문자만해도 2만7000건에 달했다. 발뺌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자 그는 검거 14시간 만에 결국 3년 간의 범행을 시인했다.

◆‘잘못했다’…뒤늦은 후회=그는 검거된 후 피해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까 두려웠다. 선후배들 물건마저 훔쳤기 때문이다. 재학 당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신도 수백만 원짜리 자전거를 도둑 맞았다며 피해자 행세를 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에 붙잡힌 후 “취업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절도 습벽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잘못했다’며 후회하는 그는 결국 눈물을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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