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을 가면서
전통시장을 가면서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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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소설가)
사는 게 단출하다 보니 시장에 갈 일은 별로 없다. 그래도 외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온다거나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으면 장보기를 해야 한다. 그럴 때면 헝겊 시장가방을 접어들고 다소 멀어도 전통시장을 찾곤 한다.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람냄새를 맡을 수가 있어서다.

편리성을 따지자면 대형마트가 낫다. 가서 최단거리로 움직이며 카트에 구매하려는 물품을 담아 계산대에 밀어 놓고 카드를 내밀면 말 한 마디 하지 않고서도 다 처리되어 장바구니만 들고 돌아오면 그만이다. 판매자나 구매자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말 한 마디 하지 않고서도 모든 처리가 가능하다. 그도 아니면 인터넷으로 주문 결제하면 지정한 시간에 맞춰 집에까지 배달된다.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 어디서 사람냄새를 맡을 수가 있는가.

하지만 전통시장에서는 우선 구조적으로도 말 없이는 상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상인은 상인대로 찾아온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장 보러 나온 사람은 그 사람대로 보다 나은 물건을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다 보니 흥정이란 게 이뤄진다. 거기에 오랜 단골이라도 있으면 이웃사촌 못지않게 반갑고, 더러는 맘씨 좋은 종업원이 깐깐한 주인 몰래 과일 한두 개씩 슬쩍 넣어주는 횡재(?)를 하기도 한다.

그곳은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십여 년이나 넘도록 변변한 가게도 없이 시장 골목 한쪽에 좌판을 벌여 생선 몇 짝씩 떼어다 팔며 자식들 공부시킨 억척스러운 아주머니도 있고, 멀쩡하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생활전선에 나선다는 것이 특별한 기술도 밑천도 없어 손수레를 끌고 나와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파는 여인네도 만날 수가 있다. 간혹 뻥튀기 장수를 만나기라도 하면 옛 향수에 젖을 수도 있고.

어렸을 적에는 장이 서는 날 간혹 부모님 손잡고 따라가기라도 하면 별천지에라도 온 것처럼 구경할 게 많았다. 원숭이를 데리고 와 약을 파는 약장수는 어찌 그리 입담도 좋고, 전파사에서 쿵쾅거리는 음악소리는 어찌 그리 사람들 신명을 돋우던지. 물론 지금은 전통시장이라 해도 예전의 그 장날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그런데 그 전통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갈 때마다 쓸쓸함마저 느끼게 한다. 여기저기 들어서는 대형마트들, 편리성을 따져 전통시장에서 대형마트로 빠져나가는 사람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가진 기술도 돈도 없어 손수레를 끌고 골목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파는 여인네는 어디로 가고, 이십 년 넘게 생선짝을 떼어다 팔며 자식 공부시킨 억척스러운 아줌마는 어디로 가야 된단 말인가? 그리고 거기서 맡아지던 사람냄새는 어디 가서 맡을 수 있나?



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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