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재중(是非在中)
시비재중(是非在中)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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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 경정)
화창한 봄기운이 삼라만상을 깨워 개나리, 진달래 등 봄꽃이 자태를 뽐내며 향기를 내뿜고 있는 춘삼월 호시절. 이 좋은 시절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어찌 감흥 없으며 마음 부풀지 않겠는가.

하지만 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의 사무실은 고성과 찌푸린 얼굴들로 봄이 아니다. 금방 교차로에서 발생한 접촉사고로 서로가 잘했다고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과 욕설로 분위기가 살벌하다. 서로를 진정시키고 자리 잡고 앉는데 또 다른 교통사고 당사자들이 얼굴이 상기된 채 들어 닥친다. 사정은 앞과 별로 다른 게 없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배려했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 가득하지만 당사자들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자기의 양보미덕은 뒤로한 채 상대방의 양보를 강요하는 일방적인 주장만 난무하다 보니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사람의 눈과 귀가 각 두 개인 것은 한쪽에 치우쳐서 보고 듣지 말라는 것을 상기하며 차분히 당사자들의 사고경위를 경청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고 맞지 않는 주장만 늘어놓는다.

우리 속담에 ‘한쪽 이야기만 듣고 송사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상대방의 진술을 듣고 시비를 가려야 한다. 조선시대 쾌남아 임제가 주막에서 술을 얼큰하게 마시고 나오면서 왼발에는 가죽신을 신고 오른발에는 나막신을 신었다. 이것을 본 하인이 “나으리 술이 취하셨습니다. 신을 짝짝이로 신었다”고 하자 “이놈아 내가 말을 타고가면 길 왼편에서 본 사람은 가죽신을 오른편에서 본 사람은 나막신을 신었구나 할 텐데 뭐가 문제냐? 어서가자.”

연암 박지원 선생의 낭환집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짝짝이 신발은 누구나 쉽게 알아본다. 그런데 말위에 올라타면 사람들은 자기가 본 쪽만 이야기한다. 서로 옳다고 사생결단을 하다가 당사자가 말 위에서 내리면 그때 자기들의 주장이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멀쑥해진다. 이처럼 세상에 알수 없는 일, 묘한 상황이 참으로 많은데 어찌 쉽게 시비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왼쪽, 오른쪽만 있지 중간이 없다. 명심하라. 시비의 가름은 중간에 있다(是非在中).시시비비를 가려야하는 우리 경찰관들이 항상 새겨 두어야 할 명언이 아닌가 싶다.

상대방의 주장에 맞장구 쳐주면 필요한 진술을 듣고 관련법규, 주변 CCTV 녹화 장면 등을 보여 가며 설명을 하고나면 마치 말에서 내린 임제를 보는 것처럼 자기들의 주장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하고 멀쑥해 하는 사람, 꽁무니 빼고 사라지는 사람 등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조사계 사무실에도 꽃피고 향기 나는 봄이 스민다. 시비재중 되뇌는 입가에도.

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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