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문화, 경남의 자랑>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경남의 문화, 경남의 자랑>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 허평세
  • 승인 201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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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년 간 바다 호령한 삼도수군의 중추
13년의 긴 세월동안 596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복원된 ‘삼도수군통제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통제영은 문화적·역사적 그 가치가 높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통제영이 세계유산으로 먼저 이름을 올린 안동 화회마을 등과 함께 세계유산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기까지는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이에 따라 통영시는 등재를 위한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사업 추진에 나서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통제영 복원과 재현

올해로 통영의 시발점이 된 통제영이 개영 410년을 맞았다. 2년후는 폐영 120년이 된다.

폐영 120년만에 통제영 성지와 주변 일부가 복원되는 등 역사 문화 도시의 새로운 도약을 기약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고 있다.

통영 문화의 기반은 통제영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통제영과 관련된 문화와 문화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따라 통제영의 손실된 문화 유산을 원래의 형태로 재창조하는 복원과 함께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과거와 현재를 재현해야한다는 여론이 줄기차게 제기됐다.

이에 통영시는 통영 300년 역사 재조명과 정체성 회복을 위해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비 359억원과 지방비 237억원 등 모두 596억원의 사업비를 쏟아부어 세병로 27 일원 4만6638㎡를 대상으로 조선시대 경상전라충청 통제영 본영 복원사업을 마무리 했다.

국보 305호인 세병관을 비롯해 중영과 백화당, 운주당, 경무당, 병고, 주전소, 12공방 등 주요 관아 건물 30여 동이 복원됐으며, 140면 규모의 전용 주차시설도 마련됐다.

복원 이후 통영관광개발공사가 위탁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영내에는 군영기 연출과 함께 각 관아 마다 현판이 설치되고, 주전소에는 조선시대 화폐와 함께 화폐 주조 과정 등이 모형과 그래픽 월(Wall)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

▲세병관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중심 건물로, 1603년(선조 37년) 충무공 이순신의 전쟁공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93호로 지정됐으나, 이후 2002년 국보 제305호에 ‘통영 세병관’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통제영이란 3도(경상ㆍ전라ㆍ충청도)의 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세병관은 19세기 말까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삼도수군을 총 지휘했던 본부로 사용됐다.

정면 9칸, 측면 6칸 규모의 목조 단층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현존하는 목조 고건축 가운데 평면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자랑해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 관아 건축물로 손꼽힌다.

장방형 평면으로 모든 칸은 창호와 벽체를 두지 않고 통간으로 개방돼 있으며, 다만 우물마루로 된 바닥의 중앙 일부를 1단 높여 위계성을 부여하고 있다.

▲12공방

예로부터 통영은 다양한 전통 문화를 꽃 피운 예향으로 널리 알려진 고장이다 특히 통영의 대표적 특산품이었던 통영 갓과 통영자개, 통영 장롱, 통영소반 등은 품질이 아주 우수해 전래 수공예품 가운데 최상품으로 통했다. 그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통영 갓은 갓일, 통영자개는 나전장, 통영 장석은 두석장, 통영발은 염장 등으로 각각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 계승되고 있다.

통영의 각종 전통 공예는 조선 후기 삼도수군통제영의 군영 공방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 12공방 체계를 이루었다. 통제영 12공방 중 칠방은 각종 수공품에 칠을 하는 공방이었으며, 공방 규모는 건물 9칸에 장인의 수는 27명이었다. 초기 칠방에서 상칠방과 하칠방으로 분리된 후 다시 상하칠방 및 칠방으로 합쳐졌다. 화원방은 각종 지도와 수군조련도 등 군사적 목적 그림과 의장용 장식화를 그렸으며 공방 규모는 8칸에 도화공 19명 등 23명이었다. 야장방은 쇠를 녹여 각종 철물의 주조 및 연마를 했으며 15명이 있었다. 입자방은 갓을 비롯 삿갓과 방갓, 전립, 패랭이, 초립 등의 각종 모자를 제작했다. 총방은 13명이 말총을 엮어 과 망건, 탕건, 유건 등을 만들었다.

또 소목방은 10명이 나무를 다루어 가구 및 문방구 등의 제반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주석방은 19명이 주석과 백동, 시우쇠 등으로 각종 장식을 만들었다. 상자방은 16명이 버들가지와 싸리, 대오리 등을 엮어 옷가지나 음식을 담는 고리를 만들었다. 은방은 2명이 금과 은을 세공해 각종 장신구를 만들었다. 화자방은 각종 신발을 만드는 곳이었다. 통개방은 작은 활과 화살을 함께 꽂아 넣어 등에 지는 가죽 주머니인 동개와 활을 허리에 꽂는 궁대를 만들었다. 안자방은 말안장을 만들었던 곳이다. 패부방은 각종 나전칠기를 만들었다. 미선방은 주로 새나 물고기의 꼬리 형상을 닮은 둥근 모양의 부채를 제작했던 곳이다. 주피방은 각종 가죽을 다루었던 곳이다.

이와는 별도로 수공품별로 독립된 공방을 갖추지 않은 각 장인들이 모여 작업하는 각장방도 있었다.

복원된 12공방 등 각급 관아



▲통제영 폐영 이후

1895년 7월 칙령에 따라 전국에 산재해 있던 병·수영 및 각 진보 등이 일시에 폐지된다. 이때 통제영도 폐영되었으며, 폐영 이후 건물들은 용도가 변경되고, 관리 부실로 훼손되기 시작됐다. 신군제 편제에 따라 구식군을 수습해 1896년 5월30일 고성지방대가, 이어서 1899년에는 군제 개편에 따라 진위대 제3연대 2대대가 주둔했다. 이때 백화당은 병영으로 사용됐다. 한일합방 이후에는 더욱 가속화돼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세병관만 남겨두고 대·소 관아 100여동의 건물들이 모두 헐리고, 이후 학교,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이 들어섰다.

더구나 일찍부터 수산업 전지기지로 일인으로부터 각광을 받게 된 통영은 1917년 이른바 전국 23개 지정면의 하나로 선정되면서 일본의 경제적 진출과 거주민의 편익을 조성하기 위한 각종 도시 계획이 활발히 전개됐다. 통영읍 승격 뒤인 1930년대 시가지 도로 축조 사업과 통영항 일대 공유수면 매립사업 등으로 현재의 시가지 골격이 이뤄졌지만 전통 군사도시이자 성곽도시로서 번성했던 통제영 영화는 근대적 도시의 구축이란 미명아래 사라지고 만 것이다.



▲통제영의 가치

통영시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는 통제영 300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우리만의 재산이 아닌 세계인의 재산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추진 목적은 첫째 통영의 문화유산을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시켜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가치를 전달하고, 둘째 세계속에 통영의 문화 유산을 널리 알리며 셋째 새로운 문화 콘텐츠적 가치 창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통제영이 세계유산에 등록될 경우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가치를 드높이고 이를 보존해 새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고, 내국인 및 지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외국인들에게는 유산 보유국의 고유한 역사성과 전통성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유산 소재지역으로 통영시 역사성과 고유성을 특성화해 관광객에게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이어져 온 문화를 현재의 시간에서 보고 느끼고 체험케 해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도모케 하는 한편 지역사회에 관련한 문학과 역사, 철학, 종교, 예술 등 지역문화 저변 확대와 유네스코 정신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정부의 추가적 관심과 지원은 물론 국제협력 및 세계유산기금 등 기술적·재정적 원조를 통해 미래 주역들에게 전통문화 보존에 대한 책임감을 고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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