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는 가라
사쿠라는 가라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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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태 (경상대학교 축산학과 교수)
진주시 금산면에 있는 경상대학교 부속 동물사육장에는 수령이 족히 반백년도 넘어 보이는 벚꽃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하늘 높이 솟아오른 나뭇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분명히 그렇게 큰 벚꽃나무가 주는 감동은 작은 벚꽃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행여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어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하얀 꽃비가 흩날리면 무릉도원을 걷는 행복이 따로 없다.

지난 주말에 동물사육장에 근무하는 정우철 선생의 배려로 그 무릉도원을 걷는 행복을 가족과 함께 만끽했다. 마치 흰 눈밭을 깡충깡충 뛰노는 강아지들마냥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로 즐겁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내와 다정한 모습의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넉넉한 백색의 축복인 벚꽃놀이를 즐기다보니 내가 무슨 복으로 이런 무상의 은혜를 누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정도로 벚꽃놀이는 확실히 감동 이상의 뭔가가 있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마음 편하게 벚꽃놀이를 즐기지 못했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민족을 36년 간이나 억압하면서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던 나라 일본의 꽃,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언제든지 다시 우리를 괴롭힐 것 같은 나쁜 나라 일본의 꽃이 사쿠라였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즐기는 사쿠라 꽃놀이를 우리도 같이 즐긴다는 것은 왠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벚꽃놀이를 즐기게 된 역사는 1924년의 ‘창경원 야앵(夜櫻ㆍ밤 벚꽃놀이)’ 실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이 땅에 일본식 사쿠라 꽃놀이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해방 이후까지 60여 년 동안 이 창경원의 야앵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본식 벚꽃놀이는 1984년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창경궁 복원공사가 이뤄지면서 이 땅에서 사쿠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때만 되면 어김없이 사라졌던 사쿠라가 다시 나타나곤 한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얍삽한 일본인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사쿠라같은 사람들이 툭툭 튀어 나와 기분을 망친다. 과거를 부정하고, 앞뒤 말이 다르고, 과정보다 승리에 목숨을 거는 사쿠라같은 사람들이 후보자의 탈을 쓰고 국민들 앞에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바야흐로 6·4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표현된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꽃놀이에 비견되는 축제인 것이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가 우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쿠라 꽃놀이가 아닌 감동 이상의 뭔가가 있는 벚꽃놀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주선태 (경상대학교 축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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