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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열전 <4>강석진 전 양산시청 감독미래를 꿈꾸는 코트의 지도자
박성민  |  smworld17@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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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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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강석진 전 감독이 경해여중을 이끌며 우승을 자치했다.
 

소년은 넓은 그라운드를 누비는 활동적인 축구가 좋았다. 하지만 피를 속이진 못했을까. 친척뻘이었던 故 강두태(전 배구 국가대표) 선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소년은 배구에 선천적으로 소질을 타고 났다. 초등학교 때 이를 알아 본 배구부 감독에 의해 발탁되었고, 소년는 운명과 같이 배구코트를 밟게된다.

큰 키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던 소년은 어느 순간 좁은 코트에 회의를 느꼈고, 머릿 속엔 축구가 있었고 “이 답답한 운동은 내가 할 것 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훗날 그 자신이 배구에 푹 빠질 것라는 예상은 전혀하지 못한 채…


◇ 축구를 꿈꾸던 소년, 배구공을 잡다

진주 문산출생인 소년 강석진은 어린 시절부터 체격이 좋았다.

시대를 풍미했던 故 강두태 선수의 영향을 받아 배구의 길로 들어섰고 기량은 날로 성장했다. 그는 경남대표로 첫 출전한 소년체전에서 동메달을 시작으로 82년 춘계중고 연맹전 우승, 84년 전국체전 우승등 중·고교시절 4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일궈냈다. 우승 경력에 더해 센터, 라이트·레프트 공격수까지 경험한 그가 대학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당시 대학 최강으로 군림했던 경기대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지만 배구에 회의를 느꼈던 그는 교직에 뜻을 두고 경상대 사범대를 선택한다. 그러나 강 전 감독은 대학 진학과정에서 경기대와 스카웃 파동(이중 등록)에 휘말리며 인생의 첫 시련을 맞는다.

그는 “처음에 축구선수가 꿈이었는데 키가 크다고 초등학교 때 뽑혀 배구를 시작했다. 남성적인 것을 하고 싶었는데 작은 코트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답답했고 결국 방황했다. 대학 초기에는 스카웃 파동으로 1년 간 쉴 수 밖에 없고 어찌보면 초창기 인생은 잘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 제대 이후 절치부심한 강 전 감독은 92년 대학배구연맹전 MVP를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특히 강팀과의 대결에서 보여준 실력은 럭키화재(현 LIG손해보험)와 한국전력(캡코)마음을 사로 잡았다. 하지만 4학년이 되자 무릎연골에 부상을 입었고 재활을 조건으로 입단한 럭키화재에서도 발목부상까지 겹치면서 선수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한양대와 경기대 시합 때 경기력이 좋아 프로구단들에게 입단제의를 받았다. 재활을 조건으로 럭키화재를 선택하고 입단을 했는데 새 감독님에게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 무리하게 훈련을 했고 결국 발목부상까지 겹쳐 선수생활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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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강석진 전 감독이 경해여중을 이끌며 우승을 자치했다.


◇ 천상 배구인, 코트로 돌아오다

은퇴 후 아내와 함께 자영업을 시작한 강 전 감독은 모두가 어려웠던 IMF시절 개인사업에 직격탄을 맞는다.

애초 지도자 생활을 염두하지 않았던 그에게 그 때 생각난 것은 배구였다. 도내 배구 불모지인 곳을 선택해 그 지역을 활성화하겠다는 꿈이 다시 생겨난 것이다. 그는 “98년도에 배구 불모지인 김해로 가자고 생각해 배구협회관계자를 찾아가 체육관과 시간을 내어주시면 배구를 통해 생활체육을 활성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무모한 도전이 3년 만에 400명으로 늘어났고 최근까지 김해에만 43개 배구클럽이 생겨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외에도 초등학교 생활체육 전담교사를 맡으면서 방과 후 프로그램 정착에도 힘을 쏟았다. 묵묵히 자기 자기에서 실력을 키운 그에게 기회가 다가왔다.

2007년 양산시청 여자배구팀 감독으로 취임한 것이다. 그는 부임 첫 해 혹독한 훈련을 바탕으로 전국대회 준우승을 차지한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성적이라 말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첫 해 준우승 한 것이 이후 계속된 우승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실업 선수들은 프로에서 방출되고 프로에 가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그 선수들에게 프로의 마음가짐으로 변화하라고 주문한 것이 주요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전국최강으로 변모한 양산시청 배구팀은 2011년 전 관왕 무실세트로 우승을 차지하는 등 현재까지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그는 “훈련을 하다보면 현미경같이 보이고 느낌이 오는게 있다. 그게 처음엔 투지만 가지고 배구를 했지만 팀 구성이라던지 숙소문제, 선수들과 소통이 월활해 질 때 완벽한 우승이 따라 왔던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현재 양산시청은 올 시즌 프로배구 우승팀 GS칼렉스의 연습상대일 정도로 독보적인 최강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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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전 감독은 제9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양산시청 여자배구단을 맡아 연속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양산시청 여자배구단은 3연패를 달성하며 현재까지 전국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 감독인생 본선은 이제부터

지난해 강 전 감독은 경해여중으로 부임해 소년체전 우승을 단숨에 이뤄낸다.

현재 감독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상황에서도 배구에 대한 새로운 미래를 준비 중 이다. 그는 “저는 저의 배구가 2012년부터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창의적 플레이가 부족했지만 지금은 시행착오를 거쳐 전술적인 면에서 변화하고 있고 세계배구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비디오 분석 등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앞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때가 오면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전술을 처음 시도했을 때 처음엔 비난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점점 내 배구를 완성시킬 자신감 갖고 있다. 꿈이 있고 꿈이 넘쳐난다. 내 꿈을 펼칠 기회가 반드시 올 것으로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배구 후진국에도 도전해 한국배구를 널리 알리는 꿈도 꾸고 있다. 전문적이 지도자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생활체육과 감독생활을 통해 실전경험을 쌓았고 그것이 저희 자산이 될 거라고 믿고있다. 나의 인생이 지금까지는 예선전에 불과하고 앞으로 수 많은 본선이 남았다고 생각한다”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강 전 감독은 또 배구계 발전을 위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배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본과 같이 어린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는 클럽제로 가야한다. 고교팀 15개, 대학팀 5개 가지고는 미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클럽제가 무슨 만화같은 소리냐고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젊은 지도자들과 같이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강석진은
출생= 1968년 8월 9일 경남 진주 문산읍
학교= 진주배영초교- 진주동명중학교- 진주동명고등학교- 경상대학교 사범대
수상경력= 한국실업배구연맹 지도자상(2011), 경남체육상 최우수 지도자상(2011),대한배구협회 지도자상(2012)
지도자경력= 양산시청(2007~2012),동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 여자 국가대표 감독(2010), 경해여중 감독(2013),현 경남배구협회 상임이사
박성민기자 smworld17@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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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전 감독은 제9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양산시청 여자배구단을 맡아 연속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양산시청 여자배구단은 3연패를 달성하며 현재까지 전국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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