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규제법, 누구를 위한 법인가?
선행학습규제법, 누구를 위한 법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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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석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정부가 지난 9일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함에 따라 전국 초·중·고교는 올해 9월부터, 대학교는 2015년 대학입시부터 전면 적용된다. 소위 ‘선행학습규제법’ 혹은 ‘선행학습금지법’이라 불리는 이 법의 취지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요인을 차단하여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학습규제법의 궁극적 목표가 공교육의 정상화 촉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의 정상화를 지원하는 내용은 전혀 없고 공교육에 대한 규제만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서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인가 의문이 든다.

선행학습규제법에 따르면 모든 초·중·고교에서는 각 학년별로 편성된 교육과정에 앞서는 선행학습이 금지되며, 이는 방과 후 교육과정에도 적용된다. 또한 국제중, 특목고, 자사고 등과 같이 신입생 선발고사를 실시하는 학교에서는 각 교육과정 이전 단계의 수준에서만 출제가 가능하고,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행학습이 금지되며, 반 배치고사에도 배우지 않은 내용을 출제해서는 안된다. 선행문제를 출제하거나 선행교육을 실시한 교사는 징계를 받고 해당 학교는 예산지원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특히 대학교에서는 대입 논술이나 면접고사에서 고교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할 수 없고, 이를 어길시 학생모집 정지, 학생정원감축, 재정지원 중단 등과 같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학원이나 교습소, 개인과외교습자는 선행학습 교육을 광고하거나 선전해서는 안된다.

선행학습규제법이 목표하고 있는 사교육 줄이기와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취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시행령이 담고 있는 내용은 여전히 학교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선행학습규제법이 공교육의 선행학습만을 규제하고, 사교육의 선행학습은 원칙적으로 이를 허용하면서, 다만 이에 대한 광고·선전행위만을 금지하고 있는데, 사교육기관이 이를 위반하더라도 처벌규정이 없어 제재할 방법이 없다.

교육과정의 범위를 지나치게 통제하면 학교와 교사의 수업운영상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일선 초·중·고교에서는 선행학습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새로운 창의교육이나 심화학습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에게 오히려 학원 등에서의 선행학습을 권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교육부는 고등학교에 있어서의 선행학습금지조항이 일반고뿐만 아니라 자사고나 특목고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사고나 특목고의 필수 수업단위가 일반고보다 적고, 교과운영에 있어서도 수능과목들을 1, 2학년에 편성할 수 있는 자율권이 부여돼 있으므로, 선행학습금지는 대입과 관련하여 일반고에는 불리하고 자사고나 특목고에는 유리할 수도 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 있고, 영어교과에 대한 인기가 높은데, 현재 3학년부터 영어교과가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1,2학년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서는 영어교과 편성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이미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1,2학년에게만 금지하면 이들의 영어에 대한 수요는 자연히 사교육을 통해 충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교에서 실시하는 대입선발고사에도 선행학습규제법이 적용되면 선행학습과 심화학습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대학의 특성에 맞는 창의적인 인재를 선발함에 있어서 자율적인 기준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도 있으므로 과도한 규제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정부가 바뀌고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을 펴왔지만 가시적인 효과만을 염두에 두다보니 교육현장에 혼란만 초래하고 여전히 사교육시장은 활개를 치고 있다. 이 법이 부디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오창석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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