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3)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3)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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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3)
<54>경남문단의 중진 세 분 지다(16) 
 
조종만 시인은 1960년 진주에서 나온 문학지 ‘영문’에 시‘강의 흐느낌’, ‘고독에서’ 2편이 추천돼 공식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당시 심사에 관여했던 시인은 설창수, 구상, 이경순 등이었다. 이때 지방에서 나온 문예지에서 문단 등용을 시킨 경우는 진주에서 나온 것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1928년 진주에서 전국권 시지로 발행했던 ‘신시단‘이 시행 공고를 한 이후 32년 후의 일이 된다. 그러다가 조종만 시인은 ’영문‘의 폐간으로 독자적인 활동이 막히자 이로부터 19년 후인 1979년 월간 ’시문학‘(주간 문덕수)에 시조 ‘겨울나무’, ‘등불을 끄고’ 두 편으로 신인 추천을 받아 중앙진출을 하게 되었다.

그는 2001년 진주시조시인협회 창립회장이 되었고 2004년 진주시로부터 문예진흥기금을 받아 ‘진주시조’ 창간호를 내었다. 그리고 2008년 경상남도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물이 빚은 노래’ 시집을 발간했다. 그간 낸 시집으로 ‘흑토’, ‘회상의 무늬’, ‘물이 빚은 노래’ 등이 있고 1997년엔 제4회 성파시조문학상을 받았고 2004년엔 진주예술인상을 받았다.

그는 교사로서 반듯한 정신과 자세로 교직의 엄정함을 솔선수범으로 보여준 사람답게 그가 입회하여 활동한 단체에는 절대 누를 끼치는 일이 없었다. 진주문인협회 주강홍 회장은 “선생님은 인천으로 주소지를 옮기고 나서도 꼬박 꼬박 진주문협 회비를 송금해 왔고, 경남문협 회비도 절대 미루거나 외면하지 않고 사무국으로 보내오신 분입니다.”하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가 소속된 한국펜클럽 경남지역위원회 사무처장 홍종기 시인도 “펜 경남 회비를 그 누구보다 먼저 보내주셨다. 밀리는 일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런 예는 거의 예외에 속한다. 문인들이 단체에 내는 회비를 잘 내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이고 그 소수는 언제나 단체의 대들보 역할을 해낸 사람들이다.

조시인이 돌아가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경남시조시인협회 하순희 회장은 기관지에 조교장 특집을 하는데 추모시조 한 편을 써달라고 필자에게 전화로 청탁해 왔다. 겨우 억지로 맞추어 써서 보냈다. ‘조종만 선생을 보내며’라는 제목이었다. “선생을 뵐 때마다 교직의 길 생각했네/ 단정히 입은 옷에 말씨조차 단정하여/ 삼가고 여미는 일이 그 길의 시작인 것.//선생은 시시때때 겨레시를 발표하고/ 삼장육구 다져낸 말 집 한 채를 올린 뒤에/ 교직이 눈비를 피해 그 집으로 들어갔네// 아, 고삐를 풀고 나서 선생이 가신단다 / 가시는 나라 그 나라에도 겨레시가 있으려나/ 교실엔 햇빛이 들고 석자 넉자 다듬을까”

조시인은 13대 진주국회의원 조만후(민주당)의 재종형인데 그 계촌에 대해서는 필자로서는 확실치 않다. 조의원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무렵이거나 그 후에 있었던 이야기다. 조의원 옆에는 문인으로서는 고 김영화 시인이 그림자처럼 보좌했다. 김 시인이 지나가는 말로 하던 이야기인데 “조종만 선생은 조의원 선거 캠프에 드나들지 않았어요.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필자는 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로 흘려 들었다. 그리고 조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두 토막이다.“조만후가 고시에 합격된 이후 얼마 안 있어 13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 민주당 후보 공천이 될 것이라고 지역에 내려와 그 사정을 말했을 때 사람들은 반신반의로 반응했어요. 어떤 사람은 조만후가 공천이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라고 핏대를 올리며 말한 일도 있었어요. 그런데 공천이 되었어요. 진주나 인근에서는 장 지지는 소리가 들려야 했는데, 한 군데서도 장 지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단 말이예요.”

조만후 의원이 공천이 되기까지는 그의 행보를 통해 짐작하는 사람들도 소수지만 있기는 있었다. 1985년 고시 사법과 합격, 86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직대, 87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시보, 88년 변호사 개업(진주), 88년 민주당 총재비서실 부실장 등으로 이어지는 깜짝 정치 행보 이전의 과정을 눈여겨 보는 사람들은 조만후 변호사가 공천을 받는다는 말이 전혀 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조시인은 그 다음 말을 이었다. “조만후가 민주당 후보가 되고 13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과정에서 진주지역 선거판도가 안개로 휩싸이고 민주당 중앙당 개표 현황은 막상막하를 가리키고, 막판에 조만후가 당선이 되는 순간 김영삼 총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그렇지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하고 무릎을 탁, 쳤다는 것 아닙니까.” 이 말을 하는 동안 조시인은 자기가 당선된 듯이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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