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야 (시인, 소설가)
이런 계모의 악행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난다. 우리의 콩쥐팥쥐전의 콩쥐 계모나 서양의 신데렐라 계모가 그러하다. 콩쥐의 계모는 돌밭매기,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 등 모짊을 일삼다가 결국은 행운을 가로챌 욕심에 친딸인 팥쥐와의 공모로 콩쥐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신데렐라 역시 비슷한 이야기구조를 갖는다. 이렇게 본다면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이혼율이 갈수록 높아간다. 이혼율이 높으면 그만큼 재혼율도 높아지고, 그러면 또 그만큼 계모가 늘어난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사회는 계모에 의한 아동 학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나아가는지도 모른다. 물론 계모라고 해서 다 의붓자식들을 학대하고 못살게 구는 것은 아니다. 친자식 이상의 사랑으로 가꾸고, 더러는 눈물겨운 이야기도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계모라 하면 먼저 부정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 관계가 맺어지는 그 순간부터 배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동의 입장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쳤든 계모가 자신의 친엄마의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고, 계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공력이 헛되다는 인식에 짜증부터 앞설 것이다. 그러니까 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어린 아동을 상대로 하자면 어른이 모든 걸 감싸 안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인생, 지나고 보면 너무도 짧다. 그 짧은 인생 중에서 계모와 의붓자식으로 만날 경우 그 아이가 성장하는 기간은 더더욱 짧아 몇 년 되지도 않는다. 계모의 입장에서 의붓자식이 성장한 뒤를 상정해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면 당하는 입장은 두고두고 어두운 기억을 걷어내지 못해 불행할 것이고, 상처를 준 자 역시 마찬가지로 떳떳하지 못한 기억에 눌려 불행할 것이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과거 경험을 통해 내일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 한 발 물러서서 내일을 생각해 보자.
전미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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