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 경정)
마침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으로 걷기 열풍이 불면서 제주의 올레가 각광을 받고 있는 때라 동료들과 걸으면서 소통과 화합 그리고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전체회의에서 운을 뗐다. 모두가 반신반의다. 책임자란 부하를 감복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존경받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잘못이 없는지 감시당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깔보이고, 친밀한 것 같지만 미움 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소신껏 밀어붙였다.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주변에 살면서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못하면서 제주 올레나 타지의 길을 논한다는 것은 자기 냉대요 자기비하란 생각이 들어 목표를 지리산 둘레길로 잡았다. 3개 도(道) 5개 시·군, 16개 읍·면 800여 마을이 환형으로 연결된 총길이 274km의 지리산 둘레길은 자타가 인정하는 힐링의 최적지다.
옛길, 고갯길, 숲길 등 다양한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자연과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익히는 만남의 장이요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고 낙엽을 밟고 눈밭에 미끄러지면서 인생무상을 배운 자기성찰의 장이었다.
항상 무엇에 쫓기듯 생활해온 빠름의 패턴에서 걷고 또 걷는 느림의 미학에 빠지고 위만보고 살아온 수직문화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아우르는 수평문화로 전환하며 멈춤과 여백을 담아 지친 심신을 치유하는 힐링의 시간, 추억과 낭만을 잉태한 행복의 장이었다.
웃고 떠들며 걸어온 시간은 비움과 귀기울림 그리고 받아들인 소통의 진수였고 새로운 먹거리는 잰걸음을 재촉했고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될 사뿐사뿐 오른 길, 조심조심 내려온 길,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한 길은 영혼의 양식이 될 것이다. 지난 세월 돌이켜보면 서로 공유하는 추억을 더듬을 수 있을 때가 아름답다는 말처럼 우리의 둘레길 순례는 모두의 가슴 속 깊이 간직되겠지. 9일간 흘린 땀방울은 세속에 찌든 노폐물이요 힐링의 증거물이 아니겠는가.
“당신은 가슴에 한그루 푸른 나무를 키우며 지리산 둘레길의 모든 구간을 걸어온 284번째의 아름다운 지리산 사람”이란 숲길의 완보 증명서는 심신의 피로가 회복됐다는 증명이 아닐까.
아 안고 싶은 자연풍경 안기고 싶은 두류산 마루
함께한 기보일보(嗜步一步)팀 고맙고 수고했습니다.
박명서 (진주경찰서 경비교통과장·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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