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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4)<55>김해 출신 배달순 시인과 가톨릭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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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20  16: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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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4)
<55>김해 출신 배달순 시인과 가톨릭시(1) 
 
김해 출신이자 1960년대 말 진주여자중학교 교사를 지낸 배달순(裵達淳, 1938-2014)시인이 지난 2월 28일 저녁에 대전시 어은동 자택에서 선종했다고 ‘가톨릭신문’은 보도했다. 서사시집 ‘아! 김대건 신부’로 잘 알려진 시인인 배달순은 진주여중에 있을 때 음악교사로 근무했다. 1959년 부산사범대학 음악과를 졸업하고 진주에 있는 진주여중, 거창에 있는 마리중학, 그리고 부산으로 가서 항도중학에 오래 봉직했다.

그는 1972년 한국문인협회 가 낸 ‘월간문학’에 ‘아침 연습’이 가작으로 뽑혀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후 ‘겨울과 여름바다의 노동’, ‘노동자의 아침’, ‘변용의 비’, ‘국도의 소리’ 등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장편 서사시집 ‘아! 김대건 신부’는 영한 대역판으로 출간돼 한국문학 작품으로서는 처음으로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었다. 배시인은 이런 공로로 1995년 12회 가톨릭대상(문화부문)을 1998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바 있다. 배 시인은 이밖에도 세계성지순례 시집‘그 나라에 가고 싶다’,‘지하철을 내리는 예수’, ‘빛으로 오시는 그대’ 등의 시집을 내었다.

배달순은 1969년 진주여자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하여 당시는 그가 아직 시인으로 등단하지 않았지만 진주시내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필자를 수시로 찾아와 밤 늦게까지 시를 이야기하곤 돌아갔다. 필자의 안사람이 산청 고향동네 경호중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가고 필자는 칠암동에서 하숙을 하고 있는데 거의 저녁마다 배시인이 찾아와 최근 발표된 필자의 시를 놓고 감탄을 하고 감격을 하며 한국시단의 조류에 함께 따라붙기 위해 처절한 고투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필자는 월간 ‘현대문학’에 ‘시, 일곱 개의 아픔’등을 발표하고 있었는데 이런 시들은 신인류의 톡톡 튀는 언어와 실험으로 일관되고 있었다. 남은 몇 년을 기다려도 한 편 발표를 못할 때에 필자는 한꺼번에 7편을 발표하고 있었다. “긴 강이 내의를 들고/ 간다 이 행동,/내 나라의 여름이 들끓고/ 기다리고 사라져가고”(모래), “정든 님아/ 질근 질근한 님아 이빨에/ 고약이 붙는다”(고약), ”아아 고조선의 부싯돌이 운다/ 바늘이 따꼼한 침을 들고“(별) 와 같은 난해 극치의 시편들이었는데 이들 시편들에 환호하는 배달순 시인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첫째 가는 필자의 독자였다.

배시인은 필자가 숙직인 밤은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소주 한 병과 구운 오징어 두 마리를 사들고 숙직실로 쳐들어왔다. 밤새워 좋은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쁜 시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말하고 “강사백, 강사백의 시는 환상이지요. 기이한 발상과 널 뛰기하는 보름날이 지요. 연으로 뜨는 시상이지요.” 극찬이 아니면 자탄이 주류를 이루는 밤, 밤은 꼬박 제 홀로 가고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시단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었다. 새벽이 되면 비로소 그는 코를 골았다. 그 저녁에 그는 음악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간간이 박재두(전 삼현여중 교장), 김석규(전 울산교육청 학무국장) 시인에 대해 말하곤 했지만 그는 확실히 강희근의 실험에 대해서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배시인은 진주여중 음악교사로 근무하면서도 교직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었다. 다만 그때를 기억해 보면 개천예술제 중등부 합창대회에서 진주여중 합창부를 우승하는 데 까지 끌어올린 것이 떠오른다. 그는 언제나 신작을 써 가지고 와 필자에게 내놓곤 했는데, 그가 김해 고향에 있을 때 열심히 성당 성가대를 지휘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는 했다. 그 성가대를 지휘하면서 대원 중의 한 사람과 연애를 했는데 그 대원이 지금의 아내라고 말했다.

그 무렵 배달순은 문단 데뷔를 하지 않은 채 시집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필자에게 구했다. ‘겨울과 여름바다의 노동’이라는 표제로 40여편을 골라 편집한 원안을 필자에게 내놓고 손질도 하고 발문도 써달라는 것이었다. 시들을 읽어 보니 당시의 신문 당선작이나 잡지 추천작이 드러내는 보편적 언어 기법에 빠져 있었다. “굵은 팔뚝을 내놓은 선원의 일상/ 뚜벅 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수평선으로 가는 길목에 달이 빠져죽은 파도에/ 그는 어느새 익사하고 있었다” 오래되어 정확한 기억에서는 비켜 있겠지만 대충 이런 흐름과 언어를 조립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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