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윤 (경남복지정책연구원 이사)
그후 서로에 대한 불신과 빚만 남은 상태에서 부부싸움은 일과가 되었다. 물론 남편은 하루도 술을 거르지 않았고, 오래전에 끊었던 담배까지 피워 댔다.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이 부부는 집을 정리하고 지인이 오래 비워둔 폐가나 다름없는 주택을 대충 손본 후 거처로 삼았다.
하루하루 시간만 축내던 어느 날, 낡을 대로 낡은 화장실의 변기가 막히는 사고가 생겼다. 수리를 위해 사람을 부르는 것조차 부담이 된 남편이 낑낑대며 변기를 수리하더니, 어설프게 고친 그 변기에서 무언가를 찾은 듯했다. 평생 은행업무 밖에 몰랐던 사람이 본인 손을 거쳐 변기가 작동되자 밑천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후 길가의 전주에 막힌 변기를 뚫는다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 남편이 얄밉고 덜 미더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던 그니가 그나마 마음을 열어 도움을 준 것은 수리요청이 오는 전화를 받아주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 수리를 나간 남편의 실수로 오물이 역류하여 의뢰인의 온갖 구박과 탓을 듣던 남편을 우연히 보았다. 남편이 알까봐 내색도 못하고 저녁 내내 운 그니는 뒷날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자세가 바뀌었다. 부끄러워 생각도 못했던 출장 수리길에 적극적으로 따라 나가 보조하고, 틈틈이 광고 전단지를 붙이러 다니고 일거리를 받아오기도 했다.
또 5일장이 서는 장날에는 작은 구루마를 끌고 나가 커피나 음료를 파는 억척도 부렸다. 이젠 환경이 좀 좋아졌는데도 그니는 그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는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구루마를 끌고 장으로 나가 힘들 때 의지가 되었던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이어간다. 그리고 여전히 5일마다 커피를 팔며 그 수익금을 모아 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서는 데 필요한 종잣돈으로 쓰라고 건넨다. ‘안 해도 된다고 해도 자꾸 도와 준다면서~.’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남편이 주부 습진에 걸렸다며 약 사러 나온 그니는 은근히 남편 자랑을 한다. 웃는 얼굴 주름 사이에 행복이 켜켜이 새겨져 아름답다.
이서윤 (경남복지정책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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