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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열전 <5>신갑용 전 동명중 교장배구 명문 키워낸 '뚜벅이 사랑'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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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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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갑용 전 동명중학교 교장.
 

신갑용 전 동명중학교 교장(77)은 비 배구인임에도 불구하고 ’소신과 열정’ 하나로 배구사랑을 실천해 진주배구의 씨앗을 뿌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신 전 교장은 1979년 5월 동명중 배구부를 창단해 전국 최고 배구명문으로 키워내기까지 조력자로서 정신적 지주역할까지 도맡았다. 고등학교 배구부창단은 이보다 앞선 1975년 이뤄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1994년 동명중학교 교기가 갑자기 배구에서 축구로 바뀌면서 배구부가 지리멸렬 와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1998년 동명중학교배구부를 재창단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동명중학교 배구부 재창단은 곧 2000년 고등학교 배구부 재창단까지 이어지며 배구부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당시 전 국가대표 배구스타였던 하종화 감독 겸 교사를 영입하면서 2005년 전국 남·녀 중고배구대회 우승을 비롯해 매년 우수한 성적을 올린다.

▲비배구인의 배구사랑.

신 전교장은 비 배구인이다. 1966년 부산대 사범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뒤 군 제대 후 1970년 대아중학교에서 수학교사를 시작으로 교편을 잡았다. 수학선생님이 배구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 대아중학교에서 동명중학교로 옮긴 후 부터다.

1972년 1월 25일 진주동명중학교가 교사를 진주시 상대동으로 이전,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데 이때 학교자체도 분위기 쇄신의 계기가 필요했었다.

신 전 교장은 “교사 이전 후 학교가 일신하면서 무엇인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배구부를 창단하고자 했습니다”라며 배구와 인연을 소개했다.

이런 생각을 학교 재단이사장에게 구체적으로 보고했고 학교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흔쾌히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습니다. 지역스포츠와 학교 발전에 대한 재단이사장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할까요.”

이때 김형필이라는 걸출한 배구선수가 신 전 교장 앞에 나타났다.

“우연이었습니다. 1975년 학교일을 마치고 시내 초원다방에서 김형필이라는 제자를 만난 겁니다. 중학교 제자였던 그를 알아보고 안부를 물었는데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배구선수였다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당장 동명중학교로 오게 했고 그해에 동명고교에 처음으로 배구부를 창단하게 됐다”고 말했다.

▲배구부의 어려웠던 시절

창단 후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1975년 고교 배구부 창단에 이어 1979년에 덜컥 중학교에 배구부를 창단했으나 배구부를 운영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많이 들었다.

선수들이 훈련할 장소가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긍긍 해야했고 있다해도 운영경비가 없어 자리를 피해줘야하는 등 서러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후원금 모금이 필요하기도 했다.

배구부 후원모금과 관련해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요즘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지만 배구부 운영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버스를 이용해 등·하교하는 학생들에게 걷기운동을 권장했습니다. 시내버스비가 20원이었는데 학생들에게 버스를 타지 말고 걸어 다녀라. 운동도 되고 돈도 절약되고 좋다고 꼬드겼지요. 아낀 왕복 시내버스비 40원은 교문 앞 ‘배구부후원 모금함’에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신 전 교장은 “처음에는 학생들이 시큰둥했으나 배구부가 성적을 내고 동명중·고교가 이름을 떨치자 적극적으로 참여해 상당히 고무됐고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라며 멋적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신 전 교장은 ‘재단이사장이 배구부 의료담당 전속의사였다’고 기억했다. 이사장이 시내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치료를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배구부 전속 병원이었지요. 이처럼 어려운 중에도 배구부를 꾸려나가는데 의료나 후원회 등 나름의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주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언젠가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대회에 출전했는데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기도 전에 비를 흠뻑 맞고 생쥐꼴이 돼 버렸습니다. 너무 서러운 생각이 들어 배구부 재창단 시 제일 먼저 빚을 내 24인승 버스를 구입했었습니다”며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했다.

▲기억에 남는 배구대회

“1984년입니다. 당시 전국 신춘중고배구연맹전 우승을 비롯해 39회 전국남여 종별선수권 우승, 소년체전 우승, 추계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우승 등 이해만도 4차례나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하종화 윤종일 박대룡 등이 주축을 이뤄 출전만 하면 우승이었고 타 시·도 중학교팀이 감히 따라오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감독들이 우리와 경기를 피하려 했을까요. 동명중과 붙으면 예선이건 본선이든 무조건 탈락이었으니까요.”

주축이었던 이 선수들은 훗날 고등학교에 진학해 명성을 떨쳤으며 하종화 윤종일 등은 청소년대표 국가대표까지 선발됐다.

그때 동명고배구부도 잘 나갔다. 김형필 감독 조련 하에 황현주 김영동 최태길 김인석 강용래 김양수 등이 주축을 이뤄 ‘전국체전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던 해였다. 동명중·고교배구부가 동시에 전국무대를 휩쓴 때였다. 특별히 이사장이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수들을 일일히 격려하기도 했다.

1984년 동명중학교는 환태평양배구선수권대회에 한국대표로 출전하게 된다.

동명중과 부산동아중 서울문현중배구부가 접전을 벌였는데 이때도 각 학교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손에 땀을 쥐게했다.

신 전 교장은 “우리가 무난히 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우리에게 배구를 배워간 동아중이 느닷없이 막판에 치고 올라왔습니다. 이 때문에 고전했는데 마지막에 극적으로 세트 점수를 확보해 우리가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며 파란과 영광의 시기를 떠올렸다.

▲배구와 교육철학.

“자율적이되 창의적인 사고를 강조했습니다. 머리를 비슷하게 깎고 똑같은 교복을 입혀 일률적으로 공부시키는 것이 교육이 아닙니다. 자유로운 생활과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야 합니다.”

신 전 교장은 다른 학교에는 교복을 입혔으나 ‘경직되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없게 만든다’며 동명중학교 학생들은 교복을 입히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는 신 전 교장의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 전 교장은 지금도 제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배구인으로 치면 김형필 감독과 황성규 교장, 이영웅 교수와 교류하고 있으며 배구인 외에는 1년에 한번씩 제자들과 모임자리를 갖습니다”라며 근황을 전했다.

“특히 동명중 6회 제자들이 사회활동이 활발한데 김경수 부산고검장, 정연만 환경부차관, 전병하 한국소비자보호원조정관 등이 매년 자리를 마련해 만나고 있습니다. 교육자로 지낸 보람인 것습니다”며 밝게 웃었다.

신 전 교장은 현재 진주시 신안동에 부인과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시간이 날때마다 사천에 마련한 텃밭을 찾아 채소를 키우고 가꾸며 인생의 후반기, 아름다운 삶을 엮어 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 전 교장은 “배구선수는 아니었지만 배구선수들의 조력자로 산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더욱이 지금도 진주배구가 명성을 잃지 않고 전국무대를 휘젓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 뿌듯하다”며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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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중이 1984년 5월 열린 전국종별배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신갑용교장을 헹가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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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전국대회 우승 후 기념촬영한 모습. 신갑용교장은 현장에까지 따라다니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오른쪽에서 2번째 앉은이가 신갑용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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