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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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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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김해출신 배달순 시인과 가톨릭시(2)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295)
<56>김해출신 배달순 시인과 가톨릭시(2) 
 
 
필자는 1999년 1월 배달순 시인이 낸 ‘겨울 활주로에서’(푸른별 출판, 한영대역본)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부산 가톨릭센터로 갔다. 그때 이어산 시인이 차를 몰았고 친구 배창도도 시집 출판건으로 동행했다. 부산 시인들이 많이 와 있었는데 김석규, 박응석, 임명수,차한수, 류명선, 정순영,김광자 등이 보였고 이날 참석자 중에는 가톨릭쪽의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기념회 중에 필자는 ‘회고담’을 했는데 진주시절의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음에 송기인 신부가 나서서 신앙시를 쓰는 배시인은 시로써 신앙을 사는 것이라고 격려했다. 송기인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언론에 늘 “노대통령의 스승격”이라는 말로 소개되었다. 송신부는 2000년 ‘민주화운동정신계승부산연대’ 공동대표를 지냈고 이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2005-2007)을 지냈다.

송신부는 그 당시 배달순 시인의 사촌 형이자 전 수원가톨릭대학장이었던 고배문한 신부의 묘지를 단장하는 데 힘을 쓰고 있었으므로 자연 배시인과 실무적인 협조 관계로 자주 만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배시인은 자주 필자에게 사촌 형 배문한 신부 영향으로 서른 살 늦은 나이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고 했고 그는 그 형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배신부는 수원가톨릭대학 학장이던 1994년 물에 빠진 신자 세 사람을 구출하고 자신은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버렸다. 살신성인의 도를 몸소 실천한 사제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있었던 출판기념회를 다녀온 뒤 배시인은 엽서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그리스도의 빛! 강희근 사백님께/ 지난 번 출판기념회때 고마우신 정 잊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했던 초판의 졸시집을 증보 개정하여 다시 증정합니다.작년 말 성지 메주고리예를 다녀 와 쓴 신작시 12편과 신앙시 10편을 더 실어 보내오니 일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1999. 4.1 요한 배달순 드림” 그 사이 증보판을 출간했다는 이야기다. 정열이 끓어넘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같이 보내온 시집에는 ‘그대 삶은 은빛 서사시’라는 제목으로 사촌형 배문한 신부 추모시를 수록했다. “태양이 바다에 비단을 짤 때/ 그는 생을 마감했다/ 예순 한 살의/회갑 그 다음날, 도미니꼬 신부여/ 꿈보다 현실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었던/ 당신의 삶은 한 편의/ 서사시/ 죽음 또한 찬란한/ 드라마였다”

배달순은 그의 시적 지향을 가톨릭 신앙시에다 두고 그쪽의 ‘블루 오션’을 이루고자 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순교성인인 김대건 신부(1822- 46)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 서사시를 20년간 손에 놓지 않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 그의 첫 서사시 ‘성 김대건’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힌국방문에 맞춰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연재되었다. 그 방한중에 교황은 김대건 신부 등 103인의 한국 순교자를 시성했고, 배시인은 시를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헌정했다. 배시인은 이후 이 시를 보충하여 1996년 단행본으로 낸 데 이어 2000년에 이르러 증보하여 다시 출판했다.

“그날 햇빛 부시게 쏟아지는 한강/ 새남터의 드높은 하늘 아래/ 푸르게 깃발 장대 위에서 펄럭이고/ 술 취한 망나니들이 칼날 번쩍이면서/ 덩실 덩실 춤추며 죽음 부를 때/ 조선의 사제 김대건 신부는/ 늠름하게 이 땅 위를 걷고 있었다./ 그때 핏물 튀면서 번지는 하늘/ 딸기빛 조선의 하늘 위를/ 아! 김대건 신부는 가고 있었다.” 문체는 느긋하며 서술적인 흐름을 잘 잡고 있다. 서사시는 이런 흐름 위에서 총 48장 장편이 완성되었다. 이 시집은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을 맞아 출간된 것이다.

배달순 시인은 서사시에서 단순히 조선인 최초의 사제로만 알려진 김대건 신부를 두고 민족주의적 정신에 투철하고 서양 선진 문물을 조선에 전래하려던 선각자로서의 면모를 유달리 강조했다. 배달순은 당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편지를 아주 잘 쓰셨고 지리학자인데다 6개 국어에 능통해 프랑스 제독의 통역도 맡는 등 김신부는 여러 가지로 교양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교할 당시 임금(헌종)도 김신부의 인품과 능력에 감복해 효수하라는 신하들의 요구를 끝내 물리치고 정중히 장사를 지내게 했어요.”라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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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 2015-09-18 14:07:09
배창도선생님은 잘 계신지... 15년 전 제 중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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