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안목, 張載坤의 남강댐 건설건의
200년 안목, 張載坤의 남강댐 건설건의
  • 경남일보
  • 승인 2014.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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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기 (논설고문)
정조 44권, 20년(1796년 병진, 순치:順治:1년) 왕조실록 5월 8일(임자)에 경상도 진주의 ‘간민(姦民:간사한 사람)’ 장재곤(張載坤)이 남강에 댐을 건설하면 진주 등 13개 읍의 홍수 방지와 침수지의 농지화 가능성을 말했으나, ‘거짓말이 드러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관찰사 이태영(李泰永)이 “보좌관을 보내 특별히 사정을 탐색, 고을 원을 엄하게 경계, 살핀 결과 지역의 형세와 백성들의 뜻이 건의한 자의 말과는 전혀 달랐다고 보고했다. 광탄(廣灘:현재 남강댐 둑)에 제방을 축조해도 낙동강의 하류는 그대로 있고, 지소두(紙所頭:내동)에 물길을 뚫어도 지맥(地脈)이 높아지게 되면, 예전의 포구는 침수지의 가감이 없어 새로이 튼 물길은 유리하게 유도하기 어렵게 된다 했다.

▶장재곤은 장마가 지면 함안·창원·초계·영산·양산·현풍·김해·칠원·의령·창령·밀양·진주·성주 등 13개 고을의 남강하류에 인접한 토지가 모두 침수되어 한 포기도 수확할 것이 없게 된다 했다.

▶지소두부터 물길을 뚫어 사천만의 바다로 흘러가게 한다면, 그 형세가 마치 병을 거꾸로 세워 쏟아붓는 것과 같다 했다. 바다와 25리에 불과하고 뚫고 소통시킬 곳도 한 마장(馬場)에 지나지 않다 했다. 물길을 뚫어 지소두 아래에 제방을 쌓아 범람을 막으면 침수되던 13개 읍에 장차 훌륭한 농지가 된다 했다.

▶불도저 등 중장비가 없었기에 사천만에 방수로 11㎞를 건설한다는 것은 ‘간민’의 허황된 ‘거짓말이 드러났다’는 관찰사의 보고도 당시로선 일리가 있다. 하나 ‘간민’으로 표현된 장재곤이 누군지는 모르나 적어도 200여년 간 앞날을 내다보고 남강댐 건설을 헌경왕후의 용동궁(龍洞宮)에 건의 한 것은 높이 평가 할 일이다.

이수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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