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
  • 경남일보
  • 승인 2014.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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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옥윤 (객원논설위원)
1347년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페스트는 온 유럽을 휩쓸었다. 불과 5년 만에 2500만에서 3500만명이 이 병으로 죽어 나갔다. 전체 유럽인구의 30~40%가 희생되었으니 가히 인류 최대의 재앙이라고 할 만하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개와 고양이가 원인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정작 페스트의 원인인 쥐의 천적을 죽이는 결과를 빚어 페스트는 더욱 창궐하는 결과를 빚었다.

페스트는 농업의 발달로 굳건했던 영주 위주의 봉건사회를 무너트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종교의 무기력함을 드러내 종교혁명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 독일의 경우 농경지의 60% 이상이 황폐화됐다. 미생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오늘날 질병을 예방하는 예방의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해 인류가 페스트보다 더욱 강력하고 위험한 에이즈와 암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도 새로운 관점을 갖고 접근하는 전기가 마련됐다. 단테의 신곡과 대비되는 보카치오의 민곡 데카메론도 페스트가 창궐했던 때 피렌체의 교외로 피신한 사회 각계각층의 10인이 펼쳐낸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프랑스의 의학자가 쓴 노스트라다무스도 이 시절에 나온 예언서이다. 알베르트 까뮈는 저 유명한 페스트라는 소설로 당시의 시대상을 묘사했다.

알제리의 한 도시에서 페스트로 인해 일어난 지식층과 종교인 의사, 그리고 사회적 혼란을 틈 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 감동을 주었다.

페스트는 유럽을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독일의 경우 논경지의 60% 이상이 휴경지로 변했으며 농노예로 굳건했던 봉건지주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신 사람의 몸값은 치솟아 인건비가 상승하고 인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처럼 재난은 인류에게 반드시 재앙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각을 갖게 하고 삶에 대한 근본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전기가 됐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예언서는 또다시 닥쳐올 재앙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인간의 자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온 국민을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넣어 무력감을 불러일으킨 세월호 사건을 중세의 유럽 페스트 창궐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국민이 느끼는 충격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우리는 근래에도 이리역 폭발사고와 성수대교 붕괴. 서해 페리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경주 대학생 집단 사망사고 등 많은 재난을 겪었다. 그때마다 다시는 이러한 인재가 일어나선 안되겠다며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나섰으나 결과는 또다시 세월호 침몰이라는 부끄럽고 참담한 인재를 야기했다.

국가권력이 북한의 무력도발에 급급해 전쟁에 대한 안보에 쏠려 있는 사이 정작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 안전망에 소홀한 결과이다. 까뮈가 그의 소설 페스트에서 고발한 위기에 편승한 각종 비리와 악, 부패를 미처 돌아보지 못한 사이 수많은 젊은 아이들이 희생됐다. 뒤늦게 ‘관피아’와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진단이 쏟아지고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고 있으나 그 후유증은 감당하기 힘들다.

악의 근원은 근본부터 씨를 말려야 했다. 소위 복음파로 일컫는 그들은 1970년대 우리나라 개신교를 뿌리째 흔드는 ‘복음 아닌 복음으로 혹세무민’했다. 그 결과는 오대양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고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는 세월호 사고까지 이어졌다.

대통령은 국가의 안전망을 새롭게 구축하겠다고 나섰다.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을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러한 대책은 나왔다. 문제는 실천력이다. 다시는 답습해선 안 될 일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페스트가 유럽의 지형을 바꾸고 오늘날 질병을 극복해 나가는 힘이 되었듯 세월호 사고는 우리사회 안전망의 일대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권력욕에만 집착해 정쟁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이 국민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반성하고 민생에 몰두하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변옥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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