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라는 올가미
주체라는 올가미
  • 경남일보
  • 승인 201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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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객원논설위원)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은 옛 동독지역의 드레스텐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의 주된 내용은 ▲남북한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3가지였다.

박 대통령은 ‘인도적 문제의 우선 해결’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를, ‘민생 인프라 구축’과 관련해서는 ‘복합농촌단지’ 조성을, ‘동질성 회복’ 방안에 대해서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의 설치를 제안했다. 남북한과 유엔이 함께 DMZ(비무장지대)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자는 제안도 거듭 내놓았다. ‘통일된 나라에서 같이 살아갈 남북한 주민이 서로 이해하고 한데 어울릴 수 있어야 진정한 하나의 한반도로 거듭날 수 있다’ 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당시 필자는 미국 여행 중 뉴저지주의 어느 호텔에서 이 연설을 들었는데 과거 여느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차별 있는 내용이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3월 9일, 독일에서 내놓은 ‘베를린 선언’의 주된 내용은 화해협력(햇볕정책)을 통한 남북한의 평화공존이었다. 이를 계기로 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김 대통령은 노벨평화상도 받았으나 이는 남한정부가 북한정부를 향한 제안이었고 구애였을 뿐, 북한 주민은 부차적 문제였다. 정상회담도 국민 몰래 갖다 바친 뒷돈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은 ‘한반도 평화증진과 공동번영 추구’였다. 역시 상대는 김정일이었다. 결과는 김일성 일가의 왕조세습을 돕는데 기여하였고, 핵개발에 일조했을 뿐 북한주민의 인권과 생활향상에는 진전된 성과가 없었다.

이는 모두 북한이 김일성 한 사람을 정점으로 이룩된 나라라는 점을 도외시한데서 비롯된 정책이었다. 북한은 주체의 나라다. 먼저 사상에서 주체를 확실히 해놓고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주체를 강조한다. 미국에서 종교 관련 통계를 조사해 공개하는 어드히런츠 닷컴(adherents.com)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북한의 주체를 종교로 분류해 놓고 있다. ‘주체사상이 옛 소련의 공산주의나 중국의 마오이즘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에서 경제라는 개념은 희박하다. 북한은 자립경제로 나라를 운영한다. ‘자기 나라의 자원과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발전하는 경제’가 자립경제다.

북한이 1993년 NPT(핵확산금지조약:비핵보유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과 보유국이 비보유국에 대하여 핵무기를 양여하는 것을 동시에 금지하는 조약)를 탈퇴하고 핵개발에 나서자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중국이 북에 대해 원유공급을 중단했다. 이로 말미암아 당시 북한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북한을 부활시키는데 앞장선 것은 남한 정부였다.’(뉴스메이커 김종규).

북한은 1970년에 접어들면서 다락밭 건설에 집중했다. 전 주민을 총동원하여 산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다락밭을 일구었다. 그 방식은 김일성의 주체농법이었다. 식량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겠다면서 시작한 북한의 다락밭은 농토 늘리기의 일환이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심각한 구조적 식량난의 원인이 되었다. 북한이 무모하게 개간한 다락밭에서 유출된 대량의 토사는 강바닥을 들판보다 높게 만들었고 항만은 기능을 잃었다. 주체라는 말로 인해 북한의 모든 기능은 마비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드레스텐 연설에서 강조한 ‘우리가 바로 그 인민(Wir Sind das Volk)’이란 말은 김정은 일파의 질곡에 함몰돼 있는 북한주민을 세상에 내놓자는 것이다. 과거 대통령들과는 달리 북한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겠다는데 있다.

해방 이후 70여년 세월 동안 우리는 북의 실상을 여실히 보아왔다. 북한의 김정은 세습체제가 과연 대화가 가능한 집단인지 헤아린 다음 북한주민을 주체사상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 길은 둘러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원칙을 지켜내야 한다.
박동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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