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타이타닉호
세월호와 타이타닉호
  • 경남일보
  • 승인 2014.05.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여객선 ‘세월호’가 일으킨 참사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글이 써 지지 않는다. 며칠을 참고 있다가 그래도 나름대로의 할 말은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타이타닉’을 마음속으로 떠 올려본다. “죽지마 로즈 ! 죽지마!”라고 외치는 사랑하는 애인의 목소리 때문에 칠흑처럼 어둡고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던 것인가! 이제는 할머니가 된 한 노인이 그 옛날을 회상하는 모습이 그리도 애잔하게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너무도 낭만적인 영화지만 영화가 아닌 현실로 보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다. 어떤 사고든지 재난이 있으려면 언제나 그만한 환경이 조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면서 직조처럼 짜여져 일어나는 사고가 바로 재난이 아닐까 싶다. 타이타닉호가 바로 그랬다.

타이타닉호는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호화로운 북대서양 횡단여객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대 침몰할 수 없는(unsinkable)’ 해상최대의 선박으로 생각했다. 그런 배도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침몰했다. 그것도 처녀출항에서다. 승객은 2224명. 이들 대부분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민자들이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의 불타는 욕망에 타이타닉호도 덩달아 흥분했던 것인가! 빙산에 주의하라는 몇 차례에 걸친 무선통신도 못 들은 척 선장은 쾌속으로 배를 몰았다. 빙산쯤이야 밀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을까? 소리도 없이 달리는 맛으로 배는 멈칫하는 기색도 없이 달리다가 그만 거대한 빙산에 부딪쳤다. 그 시각은 정확히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전방을 감시하고 있어야 할 항해사는 망원경도 없이 망루에 로봇트처럼 서 있었다. 빙산과 일직선으로 만났을 때에는 직선거리가 불과 몇 백미터! 제동을 걸어보았자 이미 때는 늦었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배가 갈아 앉는다는 소식과 함께 바다에 뛰어 들었다. 그들은 모두 북대서양의 얼음장 같은 차가운 바다에서 숨을 거두었다.

타이타닉호에 준비된 구명조끼도 구명보트도 승선인원 2224명을 위해서는 태부족이었다. 절반정도 밖에는 준비된 것이 없었다. 배는 점점 바다 속을 향해 기우려져 가고 사람들은 이에 맞춰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기 먼저 구명조끼를 입으려는 사람과 남보다 먼저 구명보트에 올라타려는 사람들로 갑판위는 아수라장 난장판이었다.

그러나 선장과 선원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여인들과 아이들을 먼저 태우라는 명령으로 승객들을 다스렸다. 이에 항의하는 승객들에게는 권총으로 위협하면서까지 거칠게 다루었다. 배안의 연회장에서는 여전히 쉬지 않고 아까부터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바다는 잔인했다. 빙산과 부딪친지 3시간이 지난 15일 새벽 2시20분에 절대로 침몰할 수 없을 것이라던 타이타닉을 바다는 집어 삼켰다. 1500명이 넘는 승객들이 사망하고 생존인원은 불과 700여명!

그러나 이 참혹한 재난 속에서도 우리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장면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장과 승무원들의 자세였다. 생존인원의 대부분은 부녀자와 어린 사람들이었고 선장과 선원들과 연회장의 연주자들은 거의 모두 살아나오지 못했다. 이는 곧 자신들이 타야할 보트의 자리와 구명조끼는 모두 승객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들은 죽음의 바다로 스스로 몸을 묻었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서 ‘세월호’ 참사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선장이라는 사람은 승객인양 남의 눈을 속이면서 홀로 탈출하였다. 승객들이 바다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라는 사람은 배가 갈아 앉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국인답게 행동하자(Be British)”라고 말하면서 선원들을 독려하였다고 한다. ‘영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강하기에 그들은 “영국인답게 행동하자”는 말로 스스로를 다짐하였을까? 남극탐험에서 아문센에게 선착(先着)의 기회를 빼앗겼지만 죽을 때 까지 “영국신사답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영웅으로 평가 받고 있는 스코트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느 순간 어느 자리에서 “한국인답게 행동하자”고 외칠 수 있을까? 부끄러운 자화상에 눈물도 사치스럽다는 생각이다.

 

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